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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9월 추석에는…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서울에 정착한 지 50년이 흘렀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은 지 벌써 그렇게 됐다. 삶의 애환이 배어 있는 고향 땅을 떠나면서 부모님은 무척이나 힘드셨다고 한다. 울기도 많이 우셨고 걱정과 근심도 가득하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식들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에 고향 땅을 등질 수 있었다고 한다. 타향에서의 낯섦과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가방 들고 학교 가는 우리 형제들을 보면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웃고, 혹은 울면서 30년을 보냈다. 그리고 부모님은 자식들을 대학교까지 보낸 뒤 미련 없이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옛날 집은 폐허가 됐지만 새로 집을 짓고 땅을 파며 땀을 흘리셨다. 그렇게 두 분이 고향에 안착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우리 형제들은 명절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민족대이동’에 합류했다. 교통 체증으로 평소보다 수시간 더 지체됐지만 그래도 귀향길은 즐거웠다. 어머니의 포근한 정에다 고향의 추억에 흠뻑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퍽퍽한 삶에다 꽉 막힌 길이 고달프지만 너도나도 고향으로 향하는 이유일 게다. 설날이면 아이들은 세뱃돈으로 두둑해질 주머니를 기대하며 설레고, 어른들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고향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을 포기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내린 5인 이상 집합 금지에 따르기 위함이다. 지난 추석 때는 우리 삼형제만 고향에 다녀왔지만 올 설날에는 그마저도 못했다. 부모님도 기꺼이 그리하라 했다. 모두들 아쉽고 슬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랜선 세배에 세뱃돈 전달도 계좌이체로 이뤄지는 가족이 많았고, 외부와 차단된 요양시설에서는 가족 간 그리움이 더욱 짙어졌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부모들은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날도 가족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부모님을 모신 가족들은 지난 추석 때는 비닐막 면회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병원 앞에서 세배를 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렇듯 코로나가 설날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바이러스가 가족 사이마저 가로막아 버린 것이다. 코로나19를 두고 “정말 잔인한 바이러스”라고 했던 말을 실감케 한 명절 연휴였다.

최근 우리나라도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족 간 감염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 정부가 추석에 이어 설날에도 가족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이어간 것이다. CNN은 미국에서 코로나19로 가족 구성원 중 최소 한 사람 이상을 잃은 가정이 45만 가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가족 누군가 감염되면 관계가 가까운 주변으로 그 비극의 씨앗이 퍼지는 서글픈 양상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79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 연구한 결과,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화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삶을 가장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외로움이다. 가족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명절 연휴만이라도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웃음꽃이 피어나는 고향의 풍성함을 느끼는 날은 언제 올까. ‘∼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처럼 9월 추석에는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송편을 빚고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장면을 그려본다. 이게 우리네 명절이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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