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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문학과 젊음은 언제나 나아간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작가


마음 놓고 여행을 떠난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특히 자유롭게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언제쯤 다시 가능할지 기약할 수 없다. 답답한 날 속에서 책장을 서성거리다가 여행이 곧 문학이 된 작품을 꺼내 읽는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여행 자체가 모든 것인 작품이다. 케루악은 1922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에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가 됐고 미국은 명실상부한 최강 대국으로 발돋움할 준비를 했다. 그들의 세대는 번영과 창창한 앞길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학은 언제나 다른 길을 비춘다. 대공황에 직접적으로 영향받지 않고 경제 부흥을 겪은 세대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 적었다. 전쟁에서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어버리자 사회에는 존재에 대한 의문과 허무가 만연했다.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산업사회와 기존 질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방황하며 마약에 손을 댔고 동양철학을 탐구하며 감각적인 재즈에 심취했다. 당시 2차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스물한 살 케루악은 글쓰기와 재즈가 관심사인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 미국 전역을 방랑하는 기록이 비트 세대의 탄생을 알린 ‘길 위에서’이다.

소설은 케루악 본인인 샐 파라다이스와 비트 세대의 전설적 인물 닐 캐시디인 딘 모리아티가 네 차례에 걸쳐 미국과 멕시코를 여행하는 내용이다. ‘길 위에서’라는 제목처럼 로드 무비 형식으로 그들의 여정과 길에서 겪은 사건과 마주한 사람들을 비춘다. 이들이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 여행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여정은 난잡하고 괴팍하다. 뚜렷한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몇 날 며칠을 운전해서 달리거나 돈 한 푼 없이 히치하이킹으로 미 대륙을 횡단한다. 갚을 수 없는 돈을 빌리거나 물건과 차를 훔치기도 하고 구걸하거나 노숙하며 사람들을 모아 파티를 벌이고 난잡한 성생활을 하기도 한다. 일견 현재 누릴 수 있는 것을 충실하게 즐기며 감각에 심취한 삶을 사는 것이 그들의 목표로 보인다. 실제 비트 세대는 약물, 동양철학, 재즈 등으로 지복(beatitude)의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로 명명됐다.

하지만 ‘길 위에서’는 단순한 방랑기에 그치지 않는다. 삶을 일부러 파괴하는 듯한 여행 중에서도 여관방에서 ‘십오 초 동안 내가 누군지 정말로 알 수 없는’ 기분에 들기도 하고, 잠시 만난 웨이트리스와 인생의 허무함을 논하다가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길거리를 홀로 방황하면서 ‘내가 죽었다가 셀 수 없이 많이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길 위에서’는 시종일관 방랑에서 만난 의문문으로 가득하다.

실제 모델이 된 이들의 생도 비트적이었다. ‘길 위에서’는 케루악이 약물에 의존해 거의 잠들지 않고 3주 동안 기억을 되돌려 한 장의 두루마리에 작성됐다. 닐 캐시디는 소설 그대로 세 번 결혼해 두 번 이혼했고 두 번째 아내와 같이 살았으며 마흔두 살에 남미에서 의문사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케루악 또한 인생 대부분을 방랑했고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알코올성 간경화가 악화돼 토혈로 죽었다. 그들의 삶과 행적은 훗날 많은 사람에게 연구됐고, 비트 세대는 나아가 반전과 평화의 히피 세대를 낳았다.

문득 문학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전에도 사람들은 여행을 떠났지만 그를 기록한 문학 작품 하나는 타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며 한 세대를 창조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도 집요한 기록으로 시대를 바라볼 수 있으며, 문학은 개인적 경험을 역사의 한 장으로 이끈다. 그래서 문학은 언제나 뜨겁게 나아간다. 무의미함에도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젊기 때문이며, 어딘가로 가야만 삶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영원한 긴 여정을 우리의 젊음은 항상 원한다. 목숨을 던지고 한 생애를 바칠 정도로 원하고 또 바란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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