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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쓰루’와 ‘따거’ 그리고 홍남기

이성규 경제부 차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욕심이 많다. 수십개의 공식·비공식 회의를 주재하는 바쁜 와중에도 한국 경제는 건실하다는 내용 등의 페이스북 글은 물론 유튜브 동영상까지 올리고 있다. 기재부 한 간부는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따지자면 기재부 모든 구성원 중 톱일 것”이라고 평했다. 어디에 있든 묵묵히 일하는 홍 부총리의 태도가 문재인 대통령의 무한 신뢰 원천일 수 있다.

한 달쯤 뒤면 홍 부총리는 직선제 개헌 이후 최장수 경제 수장으로 등극할 전망이다. 2018년 12월 부임한 홍 부총리는 오는 4월 1일이 되면 윤증현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기록(842일)을 넘어선다. 당분간 경제팀을 포함한 개각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최장수 경제 수장이라는 명예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 부총리가 이토록 오래 신임을 받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코로나19 등 예상치 못한 악재를 감안해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윤 전 장관과 같은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이 다수다.

2009년 2월 강만수 전임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은 윤 전 장관의 취임 일성은 “경기 침체를 하루아침에 정상 궤도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요술 방망이’는 없다”였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소방수’로 투입된 윤 전 장관은 특유의 솔직함으로 시장과 국민에게 신뢰를 줬다.

그가 취임 후 처음으로 한 일은 당초 3%였던 200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로 대폭 낮춘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려를 표했지만 그는 경제를 살리고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직하게 현 상황을 공유해야 한다며 대통령을 설득했다. 그는 ‘따거’(중국말로 큰 형님이란 뜻)란 별명답게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부와 여당 등과 호흡을 맞추면서 시장에 신뢰를 줬다. 그의 재임 기간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한발 더 성장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 홍 부총리를 필두로 한 현 경제팀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수십 번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 집값을 잡기는커녕 되레 폭등했는데도 정책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 상당수 국민이 ‘임대차 3법’ 부작용으로 전월세 구하기가 어려워졌는데 전월세 시장이 안정세로 돌아가고 있다고 동떨어진 소리를 한다. 코로나19 백신 도입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늦었다는 팩트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수장이 필요한 법인데 홍 부총리의 별명은 ‘홍두사미’ ‘홍백기(白旗)’다.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추진하는 여당에 강력히 반발했지만 다음 날에는 발언이 과했다며 한발 물러서는 식이다. 아마 이런 그의 태도가 ‘롱런’의 한 비결일 수 있다. ‘말 안 듣던’ 전임 김동연 부총리한테 덴 정권이 보기엔 홍 부총리만큼 권력의 의중을 잘 따르는 후임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 1호 경제수석이었던 고 김학렬 부총리의 별명은 ‘쓰루’였다. 학처럼 늘 꼿꼿이 고개를 든다 해서 일본어 ‘쓰루(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는 독재 정권 시절인 1960년대 부총리를 역임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거리낌없이 눈총을 줄 정도로 통이 컸다. ‘쓰루’처럼 홍 부총리가 최장수 경제 수장이 된 이후엔 국회에서든 청와대에서든 지금과 달리 꼿꼿이 고개를 들고 소신을 말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국민은 오래하는 부총리보다 잘하는 경제 수장을 보고 싶어 한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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