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선 힘들어진 고교 평준화… 학점제 어그러질 가능성

자사고·외고·국제고→ 일반고
2025년 3월 이후도 전환 안되면
선택과목 절대평가 등 문제 생겨

서울시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처분이 위법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18일 판결에 따라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된 서울 서초구 세화고의 모습. 연합뉴스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이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문재인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고교 평준화’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현 정부에선 고교 평준화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교육부가 고교체제 개편이라고 부르는 고교 평준화 정책은 고교학점제를 위시한 중등교육 혁신이란 큰 그림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자사고 등이 존치될 경우 이런 큰 그림도 어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일반고 전환은 고교학점제 도입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교육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보면 1학년 2학기 혹은 2학년부터 수강하는 선택과목 성적은 절대평가(성취평가제)로 산출된다. 만약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5년 3월 이후에도 자사고 등이 일반고로 전환되지 않고 존속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사고 등에 진학할 때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장 고민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내신 성적을 잘 딸 수 있을까’였다. 고교학점제 도입 전에는 석차를 매겨 등급을 산출하는 상대평가 방식이었기 때문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교내신 산출 방식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사고 등에 성적 우수자들이 몰리면서 고교학점제 추진이 이들 학교에 날개를 달아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자사고 등을 전부 일반고로 전환하는 시점과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시점이 동일한 이유 중 하나다.

김재윤(왼쪽) 세화고 교장과 고진영 배재고 교장이 판결 직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고교 평준화 정책이 ‘하향평준화’를 불러올 것이란 지적에도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사고나 일반고 같은 학교 유형에 따른 수월성 교육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다양한 수준별 수업이 가능하도록 고교학점제를 설계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상급심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헌재의 판단을 변수로 보고 있다. 교육부는 2019년 11월 자사고·외고·국제고 설립·운영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를 개정해 2025년 3월 1일 전국의 모든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토록 했다. 학교들은 이 시행령 개정이 헌법상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더욱 큰 변수는 내년 대통령 선거라는 관측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정부의 생각이 중요하다. 시행령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대선 캠프에서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한 공약이 어떻게 설계될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시행령이 아닌 법을 바꿔 다음 정부가 정책을 쉽게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회 의석수를 고려하면 정부와 여당이 마음먹으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로남불’ 논란이 여당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권의 주요 인사 자녀들이 자사고 등에 다녔거나 졸업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문재인정부는 자사고 폐지 정책을 펴면서 정작 정부 인사들은 자녀를 자사고 등에 보낸다”는 비판이 나왔었다. 황 장관은 딸의 자사고 입학과정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명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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