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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지금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만든 극우 논객 ‘림보’는 갔지만… 해악은 진행형

라디오 토크쇼 진행 러시 림보 사망

미국의 유명 보수 논객인 러시 림보(앞줄 왼쪽)가 지난해 2월 하원 회의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받은 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가 그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라디오 진행자로서 극우적 발언과 음모론 옹호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림보는 지난 17일 폐암 치료를 받던 중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로이터연합뉴스

라디오 방송 마이크 하나로 미국을 정복한 사나이 러시 림보(Rush Limbaugh)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사망했다. 림보는 미 전역에 송출되는 600여개 라디오 방송에서 하루 3시간씩 주 6일간 마이크를 잡는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였다. 그의 라디오 토크쇼는 2000만명 이상이 청취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했으니 그가 미국의 여론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3시간의 토크쇼를 오직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를 다 했다. 방송 연출자나 작가, 심지어는 음악도 없다. 뉴스와 정보, 오락, 논평을 한데 섞어 혼자서만 하는, 독특한 코미디 맛을 내는 혼합형 토크쇼다. 그는 방송 시작부터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언론과 정치인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이를 통해 청취자를 보수 세력화했고 그 세력을 확대 강화시켜 왔다. 이민자, 소수인종, 여성, 그리고 서민 빈곤층을 향한 그의 조롱과 비아냥거림은 어느새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평균 정서가 돼버렸다. 지난 30년 이상 그의 세 치 혀에서 나오는 요설에 의해 미 보수주의는 끝없이 증오와 경멸과 음란과 추악함에 불타오르고 사악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정치와 닮은꼴이다.

1980년대 국가정치를 토크쇼 주제로 다룬 최초의 방송인으로 등장한 림보는 TV에 밀려 한때 잠들어 있던 라디오 영역을 끊임없이 좌익을 공격하기 위한 우익의 기계로 변모시켰다. 그러면서 집, 직장, 그리고 이동 공간의 청취자 수백만명을 확보해 행동에 나서는 지점까지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는 미국인들에게 불만과 불신, 심지어는 증오심까지 나타냈다.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종 SNS가 허위 정보의 피난처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는 근거 없는 주장과 가짜 정보 그리고 허위 소문을 퍼뜨렸다. 그는 트럼프의 동맹자일 뿐만 아니라 트럼프 정치를 위해 미디어의 명성, 우익 공포 전술, 과격한 쇼맨십을 결합하는 엄청난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다. 그는 진실과 사실에 대해 공격을 가하는 정치적 선구자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반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림보의 가장 패악적인 도발은 성차별적 발언이다. 그는 입만 열면 여성을 혐오했고 페미니스트를 증오했다. 림보는 ‘페미니즘은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들이 사회의 주류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확립됐다’고 주장했다. 2012년 조지타운 법대생인 샌드라 플루크를 조롱하고 경멸한 발언은 최악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책인 의료보험 개혁 법안을 다루는 의회 청문회에서 플루크는 여성의 질병인 ‘다낭성 난소 증후군’ 치료를 위해 피임약 처방을 요구한 여성들에게 보험 적용이 거부된 사례를 설명했다. 이에 림보는 플루크를 공격하기 위해 자기 방송을 충분히 활용했다.

림보는 방송에서 “플루크라는 여성은 섹스를 더 많이 하기 위해 정부에 돈을 지불해 달라고 주장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이렇게 덧붙였다. “그건 그녀를 창녀로 만들죠”라고. 그리고 “그녀는 섹스를 하기 위해서 돈을 받고 싶어 합니다” “섹스를 너무 많이 해서 피임을 감당할 수 없어요” “그녀는 당신과 나 그리고 납세자들이 그녀의 성관계에 대해 지불하기를 원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림보의 무지막지한 방송 발언이다. 그는 낙태권을 주장하는 여성을 향해 경멸적인 용어로 ‘페미나치(Feminazi)’라고 불렀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나오고 림보는 죽었다. 40여년간 림보 방송 덕분에 트럼프 정치는 충분히 후일을 기약할 수 있어 보인다. 림보의 뒤를 따르겠다는 ‘리틀 림보’도 차고 넘쳐난다. 단순히 입 하나를 갖고 국가로부터 자유의 메달도 받게 되고, 연 1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이 보장되고, 플로리다 비치에 해방구의 왕국을 만들어 자가용 제트기를 운용하는 림보의 모습이 그들을 부르고 있다. 그 그룹엔 세계적 뉴스 채널 폭스뉴스의 인기 앵커들이 거의 포함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빌 오렐리가 가장 대표적이었고 션 해너티, 터커 칼슨, 글렌 벡, 마크 레빈, 로라 잉그리엄, 벤 샤피로, 알렉스 존스, 찰리 커크 등 보수 논객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SNS로 수백만명의 추종자를 이끌고 있다. 반지성주의 분열주의자들이다.

1주일째 미 주요 매체들의 가장 큰 이야깃거리는 림보의 사망이다. 그가 남긴 유산의 폐해를 바라보는 미 지식인들의 한숨이 큰 탄식으로 들린다. 트럼프 근처에서 백인우월주의를 공통분모로 2022년 중간선거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미국을 구할 묘안이 있을까. 그냥 막막하기만 하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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