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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수입차에 말려… 쌍용·대우·삼성車 “아, 옛날이여”

장기 전략 뒷전, 단기 실적만 쫓다… 경쟁력 내리막길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각사 제공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격변기 속에서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한때 규모는 작아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췄던 국내 중견 업체들은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수입차 브랜드에도 밀리는 신세가 됐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차세대 자동차 선점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어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1990년대 한국 자동차산업은 고도 성장기와 맞물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현 기아),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등이 3강 경쟁 구도를 이루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26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93년 당시 63만9000대였던 국산차 수출은 96년 121만대를 기록, 수출 시작 21년 만에 최초로 100만대를 돌파했다. 쌍용자동차는 91년 벤츠와의 기술 제휴 이후로 SUV를 비롯한 라인업 확장에 나섰고, 95년에는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가 신규 출범했다.

협회 관계자는 “90년대는 토종 완성차 업체들이 치열한 판매 경쟁을 펼치며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였다”며 “주요 수입차 브랜드보다 기술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줬었다”고 말했다.

국산 승용차 모델 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86년에는 현대차와 대우차, 쌍용차 등 총 9개에 불과했지만 91년 19개로 급증했고, 3년 뒤에는 26개가 됐다. 97년에는 29개까지 증가했다. 11년 만에 국산 승용차 모델이 20개나 늘어났던 셈이다.

대우자동차 ‘레간자’

대우차가 현대차와 기아를 매섭게 추격하던 시기도 있었다. 대우차는 96년부터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을 연달아 출시했고 그해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22.1%, 98년 33.4%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국내 자동차 업계에 거센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기아는 현대차에 인수됐고, 98년 대우차가 쌍용차를 인수했다가 이듬해 대우그룹 해체로 독자 경영에 들어갔다. 삼성차도 99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외국계 자본이 투입됐다. 대우차는 제너럴모터스(GM)에 인수돼 GM대우를 거쳐 한국GM, 삼성차는 프랑스 르노그룹에 넘어가 지금의 르노삼성차가 됐다. 쌍용차는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 2011년 인도 마힌드라에 인수됐다.

쌍용자동차 ‘체어맨’
삼성자동차 ‘SM5’

이들 중견 3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힘을 냈다. 쌍용차는 렉스턴과 무쏘스포츠 등 다목적 차량뿐 아니라 2003년 뉴체어맨을 선보이며 그해 국산 승용차 시장 점유율을 12.5%까지 확보했다. 르노삼성차는 SM5에 이어 SM3를 출시해 2003년 11%의 점유율을 가져갔다.

경영 정상화가 늦었던 GM대우도 당시 10%대의 승용차 시장 점유율을 지켜냈다.

그럼에도 중견 3사와 현대차·기아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현대차는 기아 인수 후 내수 시장 점유율 약 70%를 휩쓸었고, 글로벌 판매 확대에 나섰다.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연구소 설립 등 공격적인 투자까지 이어갔다.

반면 중견 3사는 장기적 사업 전략보다는 단기 실적과 수익에 집중하다 보니 경쟁력 약화로 내리막길을 탔다. 경영권이 외국계로 넘어가다 보니 위기 때마다 불거지는 본사의 ‘한국 철수설’에 시달려야 했다. 기존 생산설비나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속적인 투자를 받는 일도 쉬운 게 아니었다. 어려운 경영 상황에서 노사 관계가 줄곧 불안정했던 점도 문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견 3사는 최근 투입한 신차들이 연이어 부진하면서 수입차에 밀리는 입장이 됐다”며 “토종 업체들이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아야 국내 자동차산업이 발전을 이루는데 현대차·기아와 중견 3사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완성차 5사의 지난해 신차 등록대수는 160만7037대였는데, 현대차·기아가 83.4%(134만253대)의 점유율을 가져갔다. 르노삼성차는 5.97%(9만5939대)를 기록했고 쌍용차(5.47%·8만7889대)와 한국GM(5.16%·8만2955대)도 각각 5%대에 그쳤다.


지난달 중견 3사의 국내 승용차 판매대수는 수입차보다도 적었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4만7059대, 3만7045대로 1, 2위를 한 가운데 메르세데스-벤츠가 5918대로 3위에 올랐다. BMW는 5717대를 팔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쌍용차가 5648대로 5위에 올랐지만 한국GM은 5162대로 6위, 르노삼성차는 3534대로 7위까지 밀려났다.

자동차 업계는 국산차 업체 간 양극화를 심각한 위기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신차 출시와 판매 확대로 해결할 문제인데, 중견 3사는 경영 상황도 좋지 않다”며 “경영진이 외국계라 정부가 개입할 명분도 없어 뚜렷한 타개책이 없다”고 우려했다.

현대차·기아는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라인업 구축과 내수 흥행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동시에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CV(코드명) 등 전용 전기차 출시와 수소 관련 사업 확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견 3사가 단기간에 현대차·기아와 경쟁력 차이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 위기로 존폐 기로에 선 쌍용차는 현재 P플랜(단기 법정관리) 등을 통한 기업회생 절차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8년 만에 적자 전환한 르노삼성차는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직 접수, 임원 감축 및 임금 삭감 등으로 생존 전략을 가동 중이지만 지속되는 노사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GM은 올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부평2공장 가동률을 낮추면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려면 치열한 품질·서비스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의 제품 선택권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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