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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학교폭력을 막을 수 없는가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서울대 명예교수


함께 운동하던 또래들에게 어린 시절 행한 일부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폭력이 현재 성인이 된 피해자의 폭로로 드러나면서 스포츠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과거 학교폭력 사태는 학교 내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상은 성적 지상주의에 뿌리를 둔 잘못된 스포츠계 구조와 관행에서 돌출된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학생들 관리 소홀로 폭력을 막거나 적극적으로 중단하지 못한 책임이 학교에 있는 것으로 보지만 오히려 사회 전체 어른의 책임이 더 클 수 있다. 성적이 좋아야만 진학할 수 있고, 프로 진출도 가능하기에 엘리트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폭력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부모나 스포츠계를 포함한 사회 전체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이 폭력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폭력을 자기 자신이나 특정 개인과 집단에 의도적으로 물리적 힘을 가하거나 위협 등을 하여 신체적 상해, 심리적 피해, 죽음 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런 점에서 폭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속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순환성’을 가져 세대 간 전이가 일어나게 한다. 둘째, 생애 주기에 걸쳐 피해와 가해의 경험을 교차적으로 ‘반복성’을 경험하게 한다. 셋째, 폭력은 신체폭력만이 아닌 언어폭력, 정서폭력, 성폭력, 사이버폭력, 방치 등 여러 모양의 복합된 ‘다양성’을 띠고 있다. 넷째,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나 사회 규범이 새로운 폭력을 싹트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폭력을 한때 철부지 시절의 멋 모르고 한 행위로 간주하면서 가해자의 억울함을 토로한다든지, 맞더라도 프로 선수가 될 때까지는 귀 막고 입 닫고 있어야 함을 충고한다든지, 혹은 실력이 없는 애는 맞아야 실력이 늘며, 경쟁에 뒤처지게 되면 당연히 왕따시켜도 됨을 주장한다든지 하면서 지속적으로 가해의 변명과 핑계를 대는 일은 폭력을 방지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력은 본질적인 순환성과 반복성의 속성으로 인해 과거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이와 청소년기에 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 어릴 적 과거의 폭력은 잊을 수 없고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큰 상처다. 피해자가 그동안 입을 다물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가해자에게는 인생의 오점이 된 폭력 행위가 어떻게,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이제라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 삶의 질과 복지, 인권에 대한 여러 제도와 규범 등을 개선해 오는 과정에서 폭력에 대응하는 국가와 사회의 보호체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페미니즘운동의 활발한 전개, 아동 권리와 장애인 및 노인 옹호운동 확산 등 일련의 시민사회운동 과정에서 약자에 대한 폭력을 사적 문제에서 점차 사회적이고 공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해 보호서비스(protective services) 체계를 강력히 구축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세계보건기구는 폭력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개인이나 가족의 힘만으로 되지 않고 범 사회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스포츠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는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 전반의 폭력 문제 방지와 근절을 위해 보호서비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 지원이 활성화돼야 한다.

둘째, 전문사회복지사 등 보호서비스 인력이 폭력사태를 조사·판정하고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개입을 의무화하는 등 폭력 문제에 개입하는 보호서비스 체계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폭력 피해자 회복과 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 및 심지어 폭력 가해자에게도 의무적으로 보호서비스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한다. 폭력의 순환성과 반복성의 속성을 고려해 볼 때 폭력 가해자도 어릴 적 한때는 피해 경험이 있을 수도 있으며, 결코 처벌만으로는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호서비스 제공 수준과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문 인력 양성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다수 OECD 국가들은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사회복지(school social work) 제도를 갖추고 있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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