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가야금 명인의 고백 “그분은… 우리네 삶의 추임새”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최진 교원대 교수의 신앙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수자인 한국교원대 최진 교수가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연습실에서 가야금 연주자의 삶과 신앙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코로나19로 성탄의 기쁨조차 나누지 못했던 지난해 12월 24일 성탄 전야. 서울 강동구 한 작은 교회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선율이 가야금 현을 타고 흘러나왔다. 관객도 없이 카메라만 앞에 둔 채 제자와 함께 연주한 사람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수자인 최진(53) 한국교원대 교수였다.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 연습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이날 만남은 최 교수가 “깊지 않은 믿음”이라며 한사코 사양하면서 인터뷰 요청 후 한참 지난 뒤에야 성사됐다.

가야금으로 찬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첫 질문에 최 교수는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약속을 설명하기 위해 최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로 시간을 되돌렸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그는 선생님의 권유로 한국무용을 시작했다. 그러다 가야금을 운명처럼 만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무용 공연을 보러갔다가 가야금 연주를 들었어요. 듣는 순간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어머니에게 ‘나무판에 걸린 줄에서 소리가 나는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어요.”

어린 딸의 간절한 부탁에 부모님은 가야금을 사 줬다. 그리고 손끝이 터지도록 연습했다.

“약대에 가라는 부모님 몰래 대학 원서를 국악과로 고쳐 제출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했어요. ‘합격하면 1년에 최소 한 번은 가야금으로 찬양하겠다’고.”

최진 교수의 연주회 프로필 사진. 최진 교수 제공

바로 질문의 답이었다. 전남대 국악과에 진학한 최 교수는 전남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화여대에서 실기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사이 가야금 연주자로 이름을 알렸다. 전국국악경연대회, 동아국악콩쿠르, 서울국악경연대회 등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최고의 상을 받았다. 영국 캐나다 등을 돌며 가야금의 아름다움도 알렸다.

연주자로 바쁜 와중에도 최 교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교회에서 찬양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도 예수제자교회(임채근 목사)로부터 ‘크리스마스이브, 랜선 음악회’에서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나섰다.

최 교수에게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오랜 연주 생활로 손가락엔 염증이 생겼고 어느 순간 구부러지지 않았다. 재활 치료를 받아 나아졌지만 연주하는 게 두려웠다. 누군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드라마틱한 도전을 추천했다. 2006년 김해전국가야금대회에 원서를 접수한 것이다. 당시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최 교수가 콩쿠르에 나간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회 관계자들조차 최 교수가 심사하러 온 줄 알았다고 한다. 최 교수는 “하나님은 늘 1등만 하던 제 오만을 덮으려고 하셨던 거 같다”고 말했다.

큰 기대 없이 예선용 가야금 하나만 챙겨 남편과 함께 김해로 갔다. 연습은 하지 않고 숙소에서 성경책만 읽었다. 그때 성경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시편 37장 4~6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였다. 최 교수는 “눈물이 흘렀고 두려움은 사라졌다”고 했다.

다음 날 예선을 통과했다. 공연 때마다 호흡을 맞춰 온 서울에 있는 윤진철 고수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본선용 가야금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최 교수는 본선에서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고 대통령상을 받았다.

최 교수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며 가야금 연주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힘이 컸다. 최 교수는 “어머니의 기도로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면서 “어머니는 연주회가 열리면 맨 앞줄에 앉아 저를 위해 기도만 하셨다”고 말했다.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빈자리는 그만큼 컸다. 잠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교회도 갈 수 없게 됐다. 그는 “교회에 가도 어머니의 환영이 보였고, 영적으로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2013년 국가고시 출제위원이었을 때 해결책을 찾았다.

“출제위원은 한 달 가까이 합숙소에 갇혀 있어요. 기독인들끼리 주일마다 영상예배를 드렸어요. 그때 유기성 목사님, 이찬수 목사님 등의 설교를 들었죠.”

이후 온라인예배만 드리는 ‘노마드(유목민)’ 성도의 삶을 살다 2017년 새로 이사한 위례신도시에서 교회를 찾기로 했다. 차로 15분 거리에 선한목자교회를 발견했다. 바로 온라인에서 본 유기성 목사가 섬기는 교회였다. 최 교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해결책을 주시는 하나님을 “추임새 같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에서 가진 독주회 모습. 최진 교수 제공

“고수의 추임새는 긍정의 에너지예요. 창자가 힘들면 ‘얼씨구 좋다’고 힘을 주고, ‘좋지’ 하며 흥을 돋우죠. 하나님도 ‘힘들었지’ ‘잘한다’며 우리에게 추임새를 주고 계셔요.”

최 교수는 “하나님께 감사한 삶을 살되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걸어가고 싶다”면서 “기회를 주신다면 언제든 찬양과 관련된 음반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 음반엔 찬송가 460장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460장은 하나님이 어머니에게 주신 응답입니다. 어머니는 늘 저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