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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사람에게 비시는 하나님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하나님이 사람에게 비신다고?” “그 반대가 아니고?” “이런 불경스러운 말이 있나?” 루이 에블 리가 쓴 ‘사람에게 비는 하나님’이라는 책을 처음 접하고 마음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의 본질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표현이 처음 귀에 거슬렸던 것은 다른 종교나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신 관념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주는 이야기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이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물을 다 탕진하고 아버지께 돌아올 때,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철없이 유산을 먼저 달라고 요구할 때나, 그가 받은 재산을 갖고 집을 나갈 때, 아버지의 권위로 야단을 치고 타이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먼 나라에 가서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을 보내 그를 구출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유 속의 아버지는 이상할 정도로 둘째 아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뿐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들과 주인-종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자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복종하는 것이나 일방적 결정으로 아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도 아버지는 피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들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고, 아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존중했다. 그가 잠시 방황하고 고생하겠지만 그리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들을 보낼 때 아버지는 그를 마음으로는 내보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낼 때부터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확신하고 보낸 것이었다. 아들을 보내면서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간절히 비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아 제발 몸 성히 돌아와다오.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마. 제발, 제발, 꼭 돌아와다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하나님이 인류를 대하시는 방식을 가장 잘 설명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미 온 인류와 우주를 위한 선한 계획을 마련해 놓으셨다. 인류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잘못된 선택을 하여 이 땅에 죄가 가득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인류가 죄에서 해방되어 새 생명을 얻는 길도 마련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간절한 소원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어떤 값을 치르시고라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분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영광의 자리를 떠나 권위와 체면을 다 팽개치시고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 돌아온 죄인을 맞아 주신다. 거기서 더 내려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낮춰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약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신다. 이 모든 것은 인류가 죄악된 길에서 돌아오는 것을 너무 원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함을 모르는 사람은 비유의 맏아들처럼 자신의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달복달이지만, 하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면서, 잃었던 생명을 찾는 기쁨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이제 곧 3월이 되면 봄과 새 학기가 시작된다. 코로나19의 영향을 아직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준비를 다 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나아갈 때 우리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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