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원 ‘게하’를 전전하는 배달노동자들… 2박3일 합숙취재기

2박3일 그들이 들려준 숨은 사연들
생두부로 끼니 때우지만 수입 만족
같은 거주자에게 노하우 전수도
앞날 불안하지만 동료들 보며 위안


지난 23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의 한 게스트하우스. 검정색 패딩점퍼를 입은 배달노동자 오모(31)씨가 벌겋게 달아오른 귀를 두 손으로 감싸며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이날은 그가 고향인 제주에서 올라와 배달노동자로 일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그가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면서까지 배달일을 하는 이유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취업하기 위해서였다. 오씨는 “그저 따뜻한 삼시 세끼 식사와 머물 수 있는 기숙사를 제공하는 병원에 취업하고 싶다”며 “정부 청년지원사업인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이 가능한 병원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주일 전 서울로 올라왔지만 비싼 주거비 탓에 하루 9000원짜리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숙소를 구하는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보관하던 각종 전공 서적을 모조리 들고 올라오는 바람에 짐이 10㎏짜리 상자 16개에 담길 정도로 늘어났다. 숙박업소마다 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오씨를 거절했다.

오씨는 취업 때까지 용돈 벌이로 배달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는 “평소에도 즐겨 타는 자전거로 배달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은 것 아니냐”며 미소를 지었다. 배달일을 시작한 첫날에는 2시간에 총 7건을 뛰어 2만원을 손에 쥐었는데 시급이 1만원인 셈이니 매우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온 오씨는 공용 부엌 냉장고에서 본인 이름이 적힌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안에는 1㎏짜리 생두부 한 모가 들어있었다. 그는 “돈을 아끼려다 보니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해 하루에 두 번 150g씩 두부를 챙겨 먹는다”며 “이만한 영양제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나마 제대로 식사를 챙기는 때는 점심뿐인데 한 끼에 4500원 하는 인근 구청 구내식당을 매일 찾는다고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급증한 배달노동자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한 가격에 숙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단체 생활을 통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배달노동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국민일보는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2박3일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배달노동자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8인실에서 지내고 있는 40대 A씨 역시 게스트하우스를 여러 군데 옮겨가며 지내는 ‘하루살이’ 배달노동자다. 명동에 있는 캡슐형 숙소에서도 지내봤으나 밥이 제공되지 않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A씨가 사용하는 2층 침대 밑에는 여행용 캐리어가 열려 있었는데 어질러진 옷가지 사이로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가득했다. 침대 기둥에는 젖은 수건이 널려있었고 모서리마다 겉옷이 커튼처럼 걸려있었다. 침대 2층에는 마른 빨랫감들이 포개져 있었다.

A씨는 “게스트하우스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며 말문을 열었다. A씨가 배달노동자를 시작한 지는 막 3개월이 지났다. 그는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전기공학과를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5년, IT 관련 대기업 기획실에서 3년간 근무했었다. 그러다 고향인 충남으로 내려가 지인과 함께 전기공사 관련 사업을 하다 결국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

A씨는 “가족도 내가 여기에 있는 줄 모른다”며 고개를 떨궜다. 대기업 퇴사부터 지인과의 사업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몇 년째 인력알선소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퇴근 시간에 용돈 벌이로 자전거를 타고 배송을 하고 있다”며 화제를 돌렸다.

오후 9시가 되자 A씨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오씨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같은 배달노동자인 오씨에게 어떻게 배달 동선을 짜야 하는지, 배달 접수가 들어오는 애플리케이션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차근차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거실 구석구석에서는 부엌에서 넘어온 식용유 냄새가 진동했다. 다른 배달노동자가 허기를 달래려는지 프라이팬에 계란을 부치고 있었다. 복도에서는 “오늘 몇 건 하셨어요”라는 인사가 오가는 소리도 들렸다.

모두가 잠자리에 든 다음 날 새벽 2시. 이모(38)씨가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이씨는 본업으로 3개월째 택배일을 하면서 배달일도 겸하고 있다. 그는 “출퇴근 때 짬을 내 킥보드로 배달을 하는데 7건 정도 챙기면 하루에 2만5000원은 더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30살부터 건설 현장에서만 4년 반을 일했다고 한다. 이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34살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개인 일식 주점을 내고 싶어서였다. 4년간 다양한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리 공부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지만 30대가 저물어갈수록 창업에 대한 꿈은 희미해졌다.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지난해 2월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생활비 압박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시 지내게 됐다”며 “배달일로 담뱃값이라도 벌 수 있어서 조금 숨통이 트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40대를 바라보는 그가 고시원이나 옥탑방을 선택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기나긴 타지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사람의 체온이 점점 그리워지더란 것이다. 한참 동안 헬멧에 눌린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이씨는 “피곤해서 그만 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미세한 수면용 조명등만 켜진 2층으로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최지웅 신용일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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