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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적 병역 거부 인정… ‘진정한 양심’ 판단 기준은 모호

“진정한 양심 따랐다면 정당” 판결

윤성호 기자

대법원이 종교적 이유가 아닌 개인 신념에 따라 예비군훈련을 거부한 남성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비종교적 사유로 인한 예비군훈련 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첫 판례다. 향후 현역병 입영 사건에서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를 놓고 개인적 신념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객관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5일 예비군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에 의한 경우라도 ‘진정한 양심’에 따랐다면 정당한 거부 사유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A씨는 재판에서 어릴 적 폭력적 성향의 아버지를 보며 비폭력주의 신념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원래 입대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더 이상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며 예비군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 1심과 2심은 A씨가 예비군훈련만을 거부해 재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한 점에 주목했다. 예비군훈련으로 인한 불이익은 현역병보다 훨씬 적은데 이런 어려움을 감수한 걸 고려할 때 진실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도 이런 판단을 받아들였다. 무죄가 확정된 A씨는 앞으로 예비군 대체복무를 할 전망이다. 예비군 6년 차까지 매년 3박4일간 교정시설에서 급식, 물품 보급 등 업무를 한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를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할 것 등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간 대법원 무죄 판결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 같은 특정 종교 신도들에 한해 이뤄졌다.

하지만 개인 신념의 검증 기준이 모호할 수 있다는 점은 논란거리다. 종교적 신념의 경우 장기간 종교 활동을 한 기록 등을 일정 부분 객관적인 자료로 검증할 수 있다. 최진녕 법무법인 씨케이 대표변호사는 “어릴 적부터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치밀하게 준비했다면 진정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 의문”이라며 “병역 거부 사유를 넓히는 것은 병역 의무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비종교적 사유로 인한 현역병 입대 거부에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오늘 판단이 다른 비종교적 병역 거부 사건에 영향을 준다고 보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사건마다 양심의 진정성 여부를 따져야 해 사실관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대법원 1부와 3부는 이날 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B씨와 C씨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경우에는 개인적 신념이 진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성원 허경구 기자 naa@kmib.co.kr

엇갈린 병역거부 판결… 신념 있으면 ‘무죄’ 전과 있으면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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