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동휘 손정도 구례선, 독립운동 이끈 ‘통합의 리더십’ 잊지 말아야

역사소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펴낸 정진호 한동대 교수

정진호 한동대 교수가 지난 22일 경북 포항의 대학 연구실에서 자신이 쓴 역사소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잘 알지만, 임정 3대 거두 중 한 명으로 국무총리를 역임한 리동휘 장군은 잘 알지 못한다. 임정에서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제암리 학살 등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석호필(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선교사는 알아도 같은 캐나다 출신으로 북간도 용정에 은진중학교를 세운 구례선(로버트 그리어슨) 선교사는 잘 모른다.

정진호 한동대 통일한국센터 교수는 잊힌 독립운동가 리동휘 구례선 손정도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을 최근 펴냈다. 지난 22일 한동대에서 만난 정 교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세 분의 지도자를 조명하고 싶었다”며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서울대 공학박사인 정 교수는 1994년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교수를 시작으로 북한 평양과학기술대 설립 부총장을 역임하는 등 30년 가까이 중국과 한반도를 오갔다.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독립운동의 무대였던 옌볜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도 처음에는 이들의 이름이 생소했다.

세 사람은 모두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사회주의를 외치며 민족해방을 꿈꿨다. 일제가 자본주의를 앞세워 한반도를 수탈했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컸고 성경의 희년 개념 등은 사회주의와 가깝다고 여겼다. 정 교수는 “분단 이후 기독교 사회주의는 남북 모두에서 설 자리가 없었고 이들의 이름도 잊혔다”며 “분단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의도적으로 이들과 멀어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소설에서 조명한 구례선 선교사, 독립운동가 리동휘 장군, 손정도 목사(왼쪽부터).

하지만 이들은 이데올로기에 갇힌 인물이 아니었다. 좌우를 뛰어넘어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리 장군은 1919년 3·1운동 직후, 경쟁관계에 있던 상해임정과 연해주 대한국민의회를 한성임시정부로 통합하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제안을 즉석에서 수락했다. 곧바로 대한국민의회의 해산을 선언하고 통합의 길을 선택했다.

정 교수는 “리 장군이 대한국민의회에서 가진 절대적 리더십을 내려놓는 결단을 한 건 하나로 힘을 합해야 한다는 그 마음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 임정(대한민국임시정부)이 의원내각제에서 이 박사 중심의 대통령제로 바뀌면서 통합은 실패로 끝났지만, 처음 약속대로 내각제가 유지됐더라면 독립운동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손 목사 역시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정 교수는 “손 목사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만나게 하는 은사가 뛰어났던 분”이라며 “3·1운동의 숨은 기획자라 해도 무리가 아니며 임시의정원 의장으로서 임정 안팎의 갈등 해결에 힘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목사는 임정에서 나온 뒤에도 중국 지린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며 “이때 숭실중 동문 김형직의 아들인 김성주를 친자식처럼 돌봤는데, 김성주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본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자서전을 보면 손 목사를 생명의 은인이라 표현한다”며 “북에서 기독교인이 존경받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손 목사는 이념을 넘어 화합을 강조했던 분”이라고 전했다.

구 선교사는 조선인보다 더 간절히 독립을 바랐다. 함경북도 성진(현 김책시)에서 욱정교회와 제동병원을 세워 사역하던 그는 3·1운동을 준비하던 조선인들에게 자신의 집을 비밀회합 장소로 제공했다. 독립선언서 3만장을 인쇄하는 등 만세운동에 참여한 혐의로 일제 경찰의 취조를 받았다. 구 선교사는 한때 자신의 조사(현 전도사)로 사역한 리 장군과도 협력했다. 구 선교사와 리 장군이 중심이 된 ‘한아청(한국-러시아-청나라)3국선교회’는 북간도에 36개의 교회와 길동기독교학교, 은진중학 등 많은 학교를 세웠다. 은진중학은 시인 윤동주와 문익환 목사 등을 배출했다.

정 교수는 “소설 집필 과정에서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구 선교사의 막내딸 도리스 그리어슨(한국이름 구복순) 여사를 만났다”며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버지가 전해준 독립운동 이야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도리스 여사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 당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손을 번쩍 들어 우리말로 만세 삼창을 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세포분열하듯 갈등하고 분열하는 현시대에 세 분의 지도자가 삶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하나 됨”이라며 “민족의 통합과 화합을 위해 힘쓴 이 분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글·사진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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