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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개정 상법, 채찍만 능사가 아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작년 말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 여건에서 기업 부담을 늘리는 내용이 많아 경제단체는 입법 논의 과정에서 규제 철폐를 호소한 바 있다. 대부분의 경제계 목소리는 무시됐지만 전자투표제 관련 규정은 진일보돼 일률적 의무화 대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선됐다. 즉 주주총회 일반 결의 요건은 총 주식 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과 참석 주식 수의 과반 획득인데,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은 4분의 1 이상 찬성 요건이 면제된다. 매년 주총을 앞두고 주주들의 참석을 독려해 왔는데 이제 이럴 필요가 줄어들고 업무 효율성도 늘게 됐다.

이처럼 기업에 당근을 주는 정책은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올해 주총을 앞두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온라인 주총을 개최하는 상장사가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 전자투표 및 전자위임장 서비스를 이용한 회사는 659곳으로 전년(563곳)보다 17.1% 증가했다. 실제로 LG와 LS는 그룹 차원에서 모든 상장 계열사가 전자투표를 채택할 계획이고, 여기에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5곳과 현대차가 올해 주총을 온라인과 병행해 개최할 의사를 밝혀 전자투표는 앞으로 대세가 될 전망이다.

반대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3% 의결권 제한에 대한 기업의 불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부터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할 때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예컨대 한 기업의 주식을 대주주 20%, 일반주주 60%, 외국인 20%씩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감사위원 분리 선출 시 대주주 지분은 20%가 아닌 3%로 줄어든다. 일반주주가 침묵할 경우 외국인이 잔여 지분을 합쳐 연합하면 이해관계자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감사위원은 이사회 이사이기도 해 기업의 영업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총을 앞두고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3% 의결권 제한이 적용되면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14개 기업에서 대주주보다 외국인 의결권이 더 커질 전망이다. 의결권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중 10개 기업은 이번 주총에서 감사위원을 새로 선임해야 해 개정 상법의 사정권에 들어간다. 문제는 기업 입장에서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의결권을 확보하려고 지분 쪼개기를 하면 증여세·양도세 부담 등이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투기자본 공격을 방어하는 데 협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항상 백기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지난 1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참여연대가 포스코, CJ대한통운 등 7개 기업이 문제기업이라며 사외이사 추천을 주주제안하자는 안건을 기습적으로 발의한 적이 있다.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하고 택배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다는 등의 이유였는데, 절차상 문제가 있어 결국 안건 상정은 무산됐지만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상법 3% 룰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채찍이다. 다수 전문가에 문의해 보았지만 일본 등 어느 나라에서도 제도화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상법은 개정됐고, 대응은 오로지 기업 몫이 됐다. 건전한 감시 세력을 통해 대주주의 독단 경영을 견제하자는 취지라지만 실제로는 해외 투기펀드에 악용될 소지만 커지게 됐다. 소액주주나 시민단체가 대기업 지분 3% 이상을 갖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투기세력도 공격 준비에 시간이 필요할 테니 올해는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년 주총 때마다 기업 불안은 더 커질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기업들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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