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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나카모토 사토시의 눈물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2009년 1월 3일 중앙은행 통제를 받지 않는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은 직접 채굴한 첫 비트코인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블록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2009년 1월 3일자 기사 제목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폭풍이 한창일 때였다.

비트코인은 2008년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해 8월 18일 ‘bitcoin.org’라는 인터넷 도메인이 등록됐다. 이어 10월 31일 ‘비트코인: 개인 대 개인 전자화폐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A4용지 9장짜리 논문이 암호학 전문가 등에게 이메일로 전달됐다. 저자의 영문 이름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논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온전한 개인 대 개인 전자화폐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온라인 결제로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곧바로 전달된다.” 전자화폐시스템에서 금융기관은 필요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어지는 문장 곳곳에서도 기존 통화시스템의 근간인 ‘신용’과 ‘금융기관’을 부정했다. 비트코인은 개인이 발행·유통하고, 금융기관의 신용 모델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전자화폐다. 블록체인 기술이 이걸 가능하게 만든다. 비트코인은 ①분권 혹은 분산 ②위변조 불가 ③이중지불 불가 ④투명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비트코인의 탄생과 성장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함께한다. 2007년 4월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 신청을 하면서 시작된 위기는 2008~2009년에 ‘대형 금융회사 파산→신용경색→실물경제 위축→대규모 구제금융 가동→경기 침체→양적 완화(통화) 살포’로 이어지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한데 묶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부채담보부증권 등의 파생 금융상품 거래 규모는 부실해진 대출액을 훌쩍 뛰어넘었다. 다급해진 중앙은행은 법정화폐(신용화폐)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부었고, 그 부작용을 양적 완화로 가렸다. 위기는 늘 약자를 먹이로 삼는다. 수많은 가계와 개인이 파산, 실업을 겪었다. 거리로 나앉은 이들을 ‘제물(祭物)’로 바치며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은 구제금융을 받아냈다. 그 회사들의 경영진은 이 돈으로 ‘성과급 파티’를 벌였다.

이걸 어쩔 수 없는 일, 개인의 탐욕이 빚은 파국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은 이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암호화폐는 ‘사이퍼펑크’(컴퓨터, 암호기술을 앞세워 정부의 검열·통제에 맞서는 자유주의 운동)와 맞닿는다. 비트코인은 중앙집권 통화시스템과 금융자본주의가 낳은 빈부격차,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의 반복, 통화 교란, 잦은 금융위기에 맞서 싸우는 ‘세계화폐’를 꿈꿨다.

하지만 현재의 비트코인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보였을 때의 비트코인이 아니다. 제도권 금융시장 안으로 ‘거둬들여져’ 투기자산, 투자상품으로 ‘길들여지고’ 있다. 분권 경제를 지향하고, 탐욕의 금융시스템을 대체하고자 했던 열망은 사그라들고 있다. 분권·투명성에 기댄 새로운 화폐, 탐욕·광기로 얼룩지지 않는 금융시장, 개인·가계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통화시스템을 원했던 나카모토는 어디에선가 눈물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디지털화폐의 시대가 온다지만, 여전히 선택권은 금융 약자들 손에 없다.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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