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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윤석열 “진보 표방한 정권의 권력자·부패범죄 수사하면 보수인가?”

수사·기소 분리론 정면 반박
“권력층 반칙 대응 못하면 공정과 민주주의 무너질 것”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 총장은 1일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사회적 강자와 기득권의 반칙 행위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총장실 책상 뒤편에 걸린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이라는 글귀를 자주 가리켰다. 윤 총장은 “우리 검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명심해야 할 기본을 적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은 적법해야 하고, 법 집행의 의뢰인은 오직 국민이어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공정’과 ‘국민’은 사실상의 검찰 폐지에 맞서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검찰총장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었다.

갖은 권력비리 수사 경험으로부터 해외의 법제 설명에 이르기까지, 그가 3시간 넘게 격정적으로 토로한 말들은 결국 모두 “권력층의 반칙에 대응하지 못하면 공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결론을 향했다. “직을 걸고 검찰 수사권을 지키느냐”는 질문에 윤 총장은 “초임 검사 때부터 무슨 일을 하든 직을 걸고 했지만, 그런 건 별 의미 없는 말이다”고 했다. 20년 넘는 권력형 비리 수사의 대가로 고검을 전전했고 총장으로서도 징계 수모를 겪었던 그에게,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이란 직의 문제가 아닌 한국 민주주의·법치주의의 문제였다.

-지금 추진되는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등 수사·기소 분리는 진정한 검찰개혁이라 보는가.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나는 국가 전체의 반부패 역량 강화를 강조할 뿐 검찰 조직의 권한 독점을 주장하지 않는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치에도 찬성했다. 하지만 검·경이나 수사·기소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경계한다. 법 집행을 효율적으로 하고 국민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사와 기소가 일체가 돼야 한다. 경찰이 주로 수사를 맡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검·경이 한몸이 돼 실질적 협력관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나날이 지능화, 조직화, 대형화하는 중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수사·기소 분리가 왜 국민 권익을 위협하나, 정치권은 반대로 말하지 않나.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사회적 강자와 기득권의 반칙 행위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법 집행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란 결국 재판을 걸어 사법적 판결을 받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수사는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수사, 기소, 공소유지라는 것이 별도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수사 기소의 융합은 형사법 집행의 효율성과 인권보호에도 바로 직결된다. 직접 법정에서 공방을 벌인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된 수사도 할 수 있고 공소유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가벌성이 없거나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 어려운 사건까지 불필요하게 수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권침해다.”

윤 총장이 틈이 날 때마다 후배 검사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검사의 배틀필드(전장)는 법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을 밤새워 수사하던 때에도 결국 법정에서 더욱 큰 싸움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수사와 공소유지의 비율이 1대 6 정도 된다고 서로 토로하곤 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별도의 의견서를 내는 관행은 이제 일반적이지만, 이 역시 윤 총장이 2003년 광주지검 평검사로 근무할 때 처음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영장을 청구하면서 판사에게 의견서까지 내느냐”고 은근히 빈축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윤 총장은 “법 집행은 결국 설득의 과정”이라며 굽히지 않았다. 그는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기 직전까지도 직접 법정에 들어갔다.

-재판 준비(수사) 없이는 정의 실현이 어렵다는 뜻인가.

“수사를 해서 사건이 끝나는 게 아니며 공판중심주의는 강화됐다. 중대범죄 중에서도 복잡한 사건은 6개월 수사한 것이 재판에 4~5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국정농단 사건들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들지 않던가. 거대한 이권이 걸린 사건들일수록 범죄는 교묘하고 대응은 치밀하다. 수사와 공소유지가 일체가 돼 움직이지 않으면 법 집행이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내가 현역 검사들 가운데 직관(수사검사가 공판을 책임지는 일)을 가장 오래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지금 검찰을 정부법무공단처럼 만들려 하는데, 이는 검찰권의 약화가 아니라 검찰 폐지다.”

-경찰 수사, 검찰 소추로 양자를 분리해도 무방한 사건이 다수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숫자로는 그런 사건들이 더욱 많다. 피의자가 자백한 사건, 벌금을 매기는 음주운전 사건 등이다. 하지만 단순히 사건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1년에 몇 건에 머무르는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가 그간 국가의 부패 대응 역량을 좌우해 왔다. 가벼운 범죄들은 병으로 말하자면 바로 통증이 느껴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경제범죄 등 권력형 비리는 처음엔 증상을 잘 못 느끼고, 뭔가 느낀 때에는 이미 회복할 수 없게 되는 중병에 해당한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몇 건의 권력형 비리가 제대로 처벌 받으면 관행 자체가 바뀌곤 했다. 동종의 유사 범죄들이 금방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엄벌이 관행 개선으로 이어진 직접수사 경험을 말할 수 있겠나.

“2003년 대선자금 수사단에 있을 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법 정치자금 수수행위를 처음으로 처벌했다. 그때만 해도 뇌물죄가 돼야만 처벌했고 정치자금법은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다. 입법 해설서를 구해 연구관실에서 공부해 가며 수사했다. 수사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 했고, 수사 결과 법 개정이 이뤄졌다. 정치자금법의 정치자금 부정수수죄의 처벌 조항이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고쳐진 것이다. 법 개정 사례는 또 있다. 검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결과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 관여 행위를 처벌하는 공소시효가 ‘6개월’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민생과 관련된 대형 경제범죄 수사 결과로도 예방 효과를 경험했나.

“저축은행들이 고객 예금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개발 시행 사업이 뛰어들던 때가 있었다. 수조원대 공적자금 손실을 낳았는데 검찰 수사로 상당한 중형들이 선고된 뒤엔 이제 반복되지 않는다. 이후 금융 당국이 저축은행 경영평가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법정관리 직전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사기범죄도 대기업 수사 결과 사라졌다. 우리 사회 곳곳의 ‘모럴 해저드’가 사라질 때에는 검찰의 직접수사 역할이 분명 있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여권이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이 이뤄질 경우 검찰의 직접 수사는 전면 금지된다. 국민일보DB

검찰에서 윤 총장을 설명할 때 하는 말은 “권력형 비리의 ‘트렌드’가 바뀌는 길목마다 있던 검사”라는 것이다. 그는 정치권력이 현금 수표 국공채를 수수하는 사건을 수사했고, 기업이 해외 비자금을 조성하고 중요 보직에 특수관계인을 앉히는 사건을 수사했고, 권력자가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무형의 이익을 돌려받는 사건을 수사했다. 그는 범죄 방식이 전형적인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뀔 때 입증이 어려워 무죄가 선고된 사례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범죄가 구멍을 파고들수록 검사들이 법정에서 체득한 다양한 소송 경험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윤 총장은 “그 법정 경험이 수사력이고, 국민적 자산이다”고 했다.

윤 총장은 이 같은 정치·자본권력들에 대한 비리 수사를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일, ‘치외법권의 영역’을 일소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역할이었다고 윤 총장은 강조했다. 그는 “일반 형사부에서 작은 사건을 맡든 반부패 특수부에서 정치·경제적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하든, 사회 각 분야의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유린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권위주의 군사정부에서 문민정부로 가려 한 것이 과거의 민주화 운동이라면, 그 다음의 민주주의의 발전은 곧 법치주의의 발전”이라고 말했다.

-평소 ‘법의 지배’를 강조해온 것도 같은 맥락인가.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힘 있는 사람도 범죄를 저질렀다면 똑같이 처벌받고,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군부독재를 문민정부로 바꿔낸 것이 과거의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그 이후의 민주화 운동은 결국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문민정부 이후 검찰의 반부패 활동이 우리 사회 특권을 없애고,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검사도 결국 엘리트 계층이고, 검찰이 보수적인 경향을 띤다는 시각도 많지 않은가.

“기득권의 경제범죄를 파헤치면 검사를 ‘좌파’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검찰에게 그동안 과오도 있었다. 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진보를 표방한 정권의 권력자나 부패범죄를 수사하면 따라서 그것이 보수인가? 재벌이나 정치인이 형사처벌 받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이 형사처벌 받는 것을 국민이 직접 목격하기 시작하면서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보통 시민의 권리의식이 고양됐다. 이 ‘리걸 스탠더드’가 사회를 진일보하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한국 검찰만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졌다고들 하지 않나.

“어떤 경우에도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부정하는 입법례는 없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사법 선진국은 대부분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한다. ‘록히드 사건’으로 익히 알려진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도 검찰에 자체 수사 인력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엔론 회계부정 사건’도 검찰이 직접 수사했다. 사인소추(국가 기관이 아닌 일반 개인이 공소를 제기) 전통이 있는 영국조차 부패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수사·기소가 융합된 특별수사검찰청(SFO)을 만들었다.”

-여당은 영국의 SFO를 모델로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주장은 진실을 왜곡했거나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영국이 국가소추주의 도입 이후 SFO를 만든 것도 범죄가 나날이 지능화, 전문화, 대형화하자 검사가 공소유지만 하는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한 일이다. 수사·기소를 분리한 게 아니라 수사·기소를 융합한 것이고, 그 조직이 SFO다. SFO의 인력은 상근 인원만 450명 이상으로 우리나라 검찰의 반부패 수사 인력보다 훨씬 많다.”

-일각에서는 미국은 검찰 수사가 전혀 없다고들 한다.

“그것 역시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2018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미국 반독점국을 방문했었다. 총 700여명 중 300여명의 검사가 카르텔 범죄에 대해 대배심 등을 통해 직접 수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공신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로버트 모겐소 뉴욕 맨하탄지방검찰청 검사장의 대형 경제범죄 수사였다. 그는 ‘화이트칼라 범죄수사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 혜택이 미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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