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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시의 고향을 찾아서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우리들 생의 영원한 어머니이신 고향은 자신이 배태한 것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 나아가 삶의 원리와 지혜를 안겨준다. 마을의 지킴이처럼 붙박이로 남아 있는 사람이든 피치 못할 사연으로 야반도주한 사람이든 혹은 야망의 실현을 위해 남다른 각오와 결의를 가슴에 품고 떠난 사람이든 고향은 파란만장과 우여곡절로 점철된, 요람 이후 요철 심한 긴 여로의 뚜렷한 지표이자 기준이며 열쇠가 돼 방향과 균형을 잡아준다. 그러므로 너무 멀리 걸어왔다는 자책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 생의 출발지이자 삶의 원천인 고향을 떠올려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지상에 태어나 족적을 남기고 가는 것들에게는 모두가 예외 없이 원천회귀의 향수가 있다. 고향은 생의 첫 질문이 시작되는 곳이고 거듭되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려주는 곳이다. 그러나 그때의 답은 논리나 합리 등의 이성적 의미보다는 암시와 우회 등의 비유의 표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의 한살이와 마찬가지로 시인이 지은 시(詩)에도 태어나 자란 고향이 있다.

문학예술 종사자들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채(文彩)·문체(文體)가 있다. 문채·문체는 단순한 장식적 수사가 아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인식 차이가 그것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채·문체는 그 사람의 생과 삶의 총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채·문체의 차이를 결정짓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유전적 형질, 지역, 계급, 성별, 세대, 경험의 총체 등의 다양한 요소가 음양으로 작동한 결과 대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가져오고, 그 차이가 결국 그 시인의 고유한 개성적 문채·문체를 결정짓는 것이다. 따라서 문채·문체는 그의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의 반영이랄 수 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뒷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신경림의 시 ‘목계장터’ 전문)

시인이 태어나 자란 곳은 정착만을 의미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과는 달랐다. 그 마을은 농사일이 주가 되는 농촌이 아니라 때로 농사는 뒷전이거나 부업이 되고 뒷산의 광산 일이 주업이 되는 조금은 이질적인 풍속이 자리한 반농(半農)의 마을이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당시(일제강점기)의 광산에는 경향 각처의 별별 사람이 다 모여들었다.

즉, 그의 고향 마을은 일제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온 사람들의 느려 터진 토박이 방언과 함경도·평안도·전라도 등에서 내려오고 올라온 억센 팔도 사투리들이 엇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시끌벅적 장터가 들어서고 풍문이 들려오고, 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든 사람이 빈 곳을 채우는 활기 넘치는 마을의 유다른 풍속이 감수성 예민한 소년 신경림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적지 않았으리라. 이렇듯 소년 신경림은 정착과 유랑의 접경이자 교착점이랄 수 있는 고향 마을의 특유한 생태 환경 속에서 자랐다. 훗날 시와 생활에서 보이는 그의 양면적 기질(정착과 유랑, 부드러움과 강함)은 마을의 이러한 풍속에 힘입은 바 크리라.

나는 시인의 고향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영감의 원천인 ‘목계나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강안에 처박힌 조각배가 그곳이 나루터였음을 알리고 있었다. 책보를 어깨에 멘 어린 신경림이 나를 부르는 환청에 잠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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