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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봄은 가장 아래에서부터 온다

최여정 문화평론가


지난 설 연휴, 새날 아침 일찍 덕수궁으로 나섰다. 시청 앞 광장에서 경복궁까지 이어지는 광화문 거리는 차도 사람도 없이 한산했다. 이 시간에 한가롭게 전시를 보러 갈 수 있다니, 세상 많이 변했다. 예년 같았으면 설날 새벽같이 일어나 지난 밤 부쳐 놓은 전이며 국이며 다시 데워 온기를 더해 차례상을 올리고, 그 상을 물리자마자 오랜만에 만난 친지, 식구들 밥상 차리는 걸 돕느라 종일 진을 빼고 있었을 것이다. 종갓집 종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매달 한 번꼴로 명절에다 증조, 고조 기일까지 챙겨야 했다.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불어난 식구들 삼시 세끼 밥상까지 차려야 했으니 그야말로 밥상을 차리느라 일평생을 다 바친 어머니다. 어머니의 그 수고로운 밥상 덕분에 음덕을 빚어 어디서든 ‘밥값’은 하는 사람이 됐다.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조상님께는 죄송한 노릇이지만 해가 갈수록 이런 수고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늙어가는 어머니에게 미안한 아버지의 결단이었다. 젊은 자식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일이 사라질 때마다 아버지가 느꼈을 그 서운한 마음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저 가까이에 있는 조부모님 산소에 소풍 삼아 자주 모시고 가는 게 자식 된 도리로서 내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내는 일이다.

그래도 명절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제맛이건만 변해가는 세상과 코로나 때문에 달라진 명절 풍속 생각에 어쩐지 마음 한편이 썰렁해지는데, 덕수궁 마당에 화사하게 내려앉은 햇살이 곱기만 하다. 중화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미술관이 있는 석조전 분수대 앞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발끝이 몰캉하게 쑤욱 빠진다. 기우뚱 균형을 잃고 내려다보니 겨우내 얼었던 단단한 흙이 햇빛을 담아 몽글몽글 풀어지고 있었다. 봄은 가장 아래에서부터 온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10∼45년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았던 미술인들과 문학인들의 우정과 교류를 통한 작품들을 공개하는 전시다. 2관에 진열된 귀한 책들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그중 두 권의 책 앞에서 그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백석 시집 ‘사슴’과 김기림 시집 ‘기상도’의 초판본이다. 두 권 다 36년 출판됐다. ‘무장정의 장정’으로 어떤 장식도 넣지 않은 백석 시집의 지극한 세련됨, 시인 이상이 편집하고 장정했다는 김기림 시집의 도전적인 아방가르드함. 일제 치하 잃어버린 조국에서 신음하면서도 낭만을 잃지 않은 당시 예술가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가 도저히 모방할 수 없다.

전시를 보고 나와 광화문광장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손에 든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행렬을 이루고 서 있다. 이방인들은 타국의 명절을 감염병이 창궐한 쓸쓸한 거리에서 맞는다.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 있는 시선을 던져주면 좋겠건만 오가는 이들 없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 행렬 뒤 한 장면이 영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텅 빈 인도 위에 한 남자가 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눈을 감은 채 황홀한 듯 하늘로 얼굴을 향하고 서 있다. 노숙인이었다. 그는 맨발이다. 시멘트 바닥 냉기를 막기 위해 한 번도 벗지 못했을 찐득하게 때 묻은 겨울 점퍼도, 뒤꿈치가 다 해지고 솔기도 다 뜯긴 운동화도 옆에 벗어두고 그는 온몸으로 봄볕을 가득 안고 있었다. 햇살은 꺼칠한 그의 뺨을 어루만진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안도감.

우리가 그랬듯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다시 꽃피울 것이고, 감염병은 끝날 것이며, 봄은 반드시 다시 온다. 지난 한 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의 등장으로 자연의 경고를 호되게 겪고 나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그 자연의 순환이 이토록 위안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낸 겨울이 가고 봄은 온다. 2021년 광화문 거리에 쏟아지는 봄이 찬란하다.

최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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