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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벨벳 혁명 항거의 현장… 체코 현대史를 만들다

[세계의 광장을 가다] ⑩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중앙박물관 아래 바츨라프 광장 초입에는 체코의 민족영웅이자 국가 수호성인인 바츨라프 대왕의 기마상이 웅장하게 서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나치 독일에 대한 항거와 ‘프라하의 봄’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곳이며 벨벳 혁명이 실현된 역사의 현장이다.

1918년 10월 28일 체코 수도 프라하의 바츨라프광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지배를 받던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선언문이 낭독되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민족 영웅이자 국가 수호성인인 바츨라프왕의 기마상 앞에서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독립을 축하했다.

20여년이 흐른 뒤 위기는 또 닥쳤다. 나치 독일이 1939년 체코를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다. 그해 11월 나라가 처한 참담한 현실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던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바츨라프광장에 모여 나치 강점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때 군중에 숨어 있던 사복 경찰이 쏜 총에 카를대학 의과대 학생 얀 오플레탈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장례식엔 수많은 군중이 참석했으며 장례식 행렬은 거대한 시위로 이어졌다. 나치 독일은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고 학생 1200여명은 집단수용소로 보내졌다. 이에 맞서 체코슬로바키아 저항군은 1945년 5월 5일 시민 봉기를 일으켜 나치 독일이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프라하를 지켜냈다.

해방도 잠시, 체코슬로바키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군에 점령당하며 공산화됐다. 20여년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1968년 1월 알렉산더 두브체크 총리가 이끄는 새 정권이 국가와 권력자를 위한 사회주의가 아닌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규모 개혁 정책을 단행했다. 소련은 20여만명의 군대와 탱크, 장갑차를 끌고 프라하를 봉쇄했다. 대군 앞에서 프라하시민들은 인간 벽을 만들어 대치했지만 소련군 탱크는 바츨라프광장을 지나 프라하시내를 짓밟으며 무차별 발포했다. 시민들은 3일간 치열하게 싸웠고 137명의 사망자, 500명 이상의 중상자만 남긴 채 진압됐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주인공 테레사가 소련군 탱크에 항거하는 프라하시민들의 시위 장면을 사진에 담는 장면이 나온다. 1968년 프라하는 자유를 빼앗긴 도시였고, 소련의 감시와 지배를 받아야 했기에 청년들의 저항은 계속됐다. 이듬해 카를대학 학생 얀 팔라흐에 이어 얀 자이츠가 바츨라프광장에서 잇따라 분신해 사망하자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두 청년의 희생은 후일 체코 민주화운동의 밀알이 됐다.

도시의 광장은 시내 중심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곳이다. 그만큼 큰 집회와 시위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독립과 민주화 등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프라하 바츨라프광장이 대표적이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프라하의 봄’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곳이다. 현재 바츨라프광장의 끝, 중앙박물관 앞에는 얀 팔라흐와 얀 자이츠가 1969년 민주화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곳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월 11일 체코 프라하 중앙역에 내려 인근에 있는 바츨라프광장을 찾았다. 총 길이가 750m에 달하고 넓이는 4만5000㎡에 육박하는 큰 광장이다. 양쪽에 도로가 있는 중앙광장 형태로 조성돼 있다. 광장(square)보다는 대로(boulevard) 성격이 강하다.

바츨라프 광장에는 화단이 조성돼 있고 벤치가 놓여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중앙박물관 아래 광장 초입에는 체코의 세종대왕격인 바츨라프왕 기마상이 웅장하게 서 있다. 이 광장은 1989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화운동의 결실인 ‘벨벳 혁명’이 실현된 곳이다. 지금은 화단이 조성돼 있고 벤치가 놓여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주변에는 호텔, 백화점, 고급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클럽이 즐비하다.

바츨라프광장은 프라하의 황금기를 이룬 카를 4세 재위 기간인 1384년에 조성됐다. 14세기 보헤미아 사람들은 구시가지 광장과 구분해 이곳을 ‘신시가지 광장’으로 불렀다. 신시가지가 커지면서 14세기 후반에는 말을 주로 거래하던 가축시장이 조성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 시장 광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는 도시에서 말을 탈 일이 없어졌고 가축시장도 열리지 않게 되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이에 보헤미아 사람들이 선택한 이름은 10세기 초반 나라를 공명정대하고 훌륭히 다스렸던 인자한 군주이자 젊은 나이에 사망한 뒤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추앙된 바츨라프왕이었다. 1887년 광장의 가장 높은 곳에 바츨라프왕 기마상이 세워지면서 이 광장은 ‘바츨라프광장’으로 불리게 됐다.

바츨라프광장에선 부활절 및 크리스마스 등 축제 시즌에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매년 4월 1일부터 23일까지 부활절 시장이 열려 전통 체험 행사, 전통 공예품 및 음식 판매,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11월 26일부터 1월 6일까지는 성탄절 시장이 열려 크리스마스 물품 판매와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매년 여름(6~9월)에는 국내외 설치예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자국의 아티스트를 홍보하는 ‘Sculpture Grande’가 열리고, 매년 7월에는 공연예술 페스티벌도 진행된다.

사진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의 탱크에 맞서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는 장면. 뉴시스

바츨라프광장은 리노베이션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기존 중앙광장(보도)을 확장하고, 양측 차로에 나무를 심어 보행자 전용 거리로 바꾸겠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객 증가로 인해 시민들의 광장 이용률이 감소하고 있어 광장의 잃어버린 사회적 기능과 공공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독립과 민주화 열망이 분출했던 바츨라프광장은 이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나라 광화문광장도 바츨라프광장과 구조가 비슷하다. 중앙에 보행 광장이 있고 양측에 차도가 있는 섬 구조다. 바츨라프광장이 리노베이션을 추진하는 것처럼 광화문광장도 ‘거대한 섬’이라는 오명을 벗고 보행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오는 6일부터 세종문화회관 서측 차로를 폐쇄하고 보행 공간으로 바꾸는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올 하반기부터 새 광화문광장은 차도를 건너지 않고도 여유있게 산책하며 꽃과 나무가 우거진 공원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프라하=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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