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 깨서 반려견 치료”… 믿고 맡길 ‘진료 표준화’ 시급하다

[들쑥날쑥 반려동물 의료비 격차] (하) 대안은 ‘진료 표준화’

게티이미지뱅크

11살과 9살 노견 ‘슈가’와 ‘메리’를 기르는 직장인 박모(29)씨 가족은 동물 의료비로 지난해에만 1000만원을 지출했다. 반려견들이 나이가 들면서 척추디스크와 뇌종양 등 난치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함께 자란 슈가와 메리가 건강할 수만 있다면 박씨는 모든 치료를 다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치료비는 상상 이상이었다. 박씨 부모님과 동생은 결국 적금을 깨고 신용카드 한도를 늘려야 했다. 박씨는 2일 “펫 의료보험 가입도 고민했지만 보험료는 비싼 반면 보장 항목이 적어 가입을 포기했다”며 “사람처럼 반려동물도 공적 의료보험이나 다양한 특약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악 강사 김모(28)씨도 코로나19로 수입이 끊긴 지난해 11살 반려견 두 마리의 병원비 700만원을 마련하느라 등골이 휘었다. 반려견들은 심장에 이상이 생겨 혈액 30%가량이 돌지 않는 판막 역류증과 통증이 심한 중증 치주염을 앓아 국내에 몇 개 없는 전문병원을 다녔다. 김씨는 “병원마다 진료 항목과 비용이 들쑥날쑥해서 말로만 듣던 의료 쇼핑을 다녔다”며 “300만원 단위의 지출이 잦아져 신혼집 마련 등 미래 계획을 당분간 접어야 했다”고 전했다.

동물 의료 수요가 커지고 시술이 전문화되면서 거액의 의료비 지출에 대비한 펫 의료보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당장 의료보험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진료코드조차 없다. 진료코드란 동물의 나이와 통증 부위, 질환, 중증도 등을 기록한 것이다. 동물 진료코드는 질환별 개체 수와 치료비 통계 등 빅데이터 수집의 기준점이 돼 동물의료산업 발전의 초석으로 여겨지는데 한국은 동물 진료코드 도입 및 의료행위 표준화가 느려 동물 치료 관련 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진료코드가 없으니 관련 통계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2019년엔 ‘발치 비용이 최저 5000원부터 최대 40만원까지 80배 차이가 난다’는 한 시민단체의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반려견의 젖니를 뽑는 간단한 5000원짜리 시술과 전신마취를 동반한 40만원짜리 영구치 발치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한 과장된 통계였다.


진료코드 부재로 의료현장에서는 수의사와 동물 보호자 간에 ‘덤터기’ 오해가 빚어진다. 같은 혈액검사라도 검사 항목에 따라 비용은 3배씩 차이가 난다. 백혈구, 혈소판, 빈혈만 따지는 간이검사는 2만원대지만 간·신장 수치 등 12가지 항목을 점검하는 정밀검사 비용은 7만원이 넘는다. 광주의 한 동물병원 수의사는 “같은 가짓수를 검사하는데 비용을 몇 배씩 받는 수의사는 없다”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환자에게 알릴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손해보험사들도 정확한 통계가 없어 시장조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A보험사는 동물 의료보험 상품을 출시했으나 2년이 지나도록 1000건도 판매하지 못했다. A보험사 관계자는 “병원마다 시술행위와 진료비가 천차만별”이라며 “손해율이 큰 지금으로선 펫 의료보험은 구색 맞추기 상품 정도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B보험사 관계자도 “동물 의료의 경우 진료행위와 비용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워 평균치를 수집해 분석하는 수준”이라면서 “수익성 예측이 어려워 동물 의료보험 상품은 아직도 개발 단계”라고 밝혔다.

스웨덴 미국 캐나다 등 동물 의료 선진국은 진료코드를 확립해 이를 근거로 의료보험 시장을 키워왔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9년 발표한 ‘반려동물보험 현황 및 향후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동물 보험가입률은 0.2%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19.8%, 캐나다는 15.3%, 스웨덴은 40%에 이른다. 보고서는 “질병코드 및 진료행위 표준화로 합리적인 진료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소비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반려동물보험 시장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에도 동물 진료코드의 기본 틀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서울대 수의학대학 연구팀은 농림축산식품부 의뢰로 낸 ‘동물병원 진료 표준화 방안 결과 보고서’에서 자체 제작한 한국형 수의 표준 질병코드(Veterinary KCD)를 발표했다. 코드는 알파벳과 숫자를 섞은 7자리 조합이며 동물 종류, 질환명, 선천성과 후천성 등 발병 요인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1500만 동물 반려인의 복지 향상 및 관련 산업 발전 차원에서 동물 의료 표준화를 서두를 것을 주문한다. 심준원 한국반려동물보험 연구소장은 “코드가 정립되면 어떤 부위에 무슨 질병이 있는지, 그 동물에게 어느 약품을 몇 ㏄ 넣을지 정해진다”며 “이런 기준이 있어야 병원 간 비용을 비교하고 보험 등 관련 상품 개발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올 상반기 국회에서는 농식품부의 ‘수의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본격 논의될 예정이다. 동물 진료코드 도입 및 의료행위 표준화 도입을 둘러싼 수의사단체와 정치인, 정부의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이익집단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것인지가 합의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수의사단체는 보호자와 동물병원에 부과되는 일종의 사치세인 ‘부가세’의 폐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심 연구소장은 “표준화 논의 과정에서 동물 의료비 부가세 폐지 및 병원 규모에 따라 1~3차 병원을 구분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 수의사단체의 요구안이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들쑥날쑥 반려동물 의료비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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