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자리에서 교회 개척의 자리로

코로나19 이후 플랫폼 처치를 지향하라 <8>

더크로스처치 예배팀 레비스탕스의 길나율 간사가 지난달 찬양하며 예배 인도를 하고 있다.

더크로스처치의 강대상은 전도사와 목사에게만 열려 있지 않다. 매주 월요일 경제영역을 위해 중보하는 예배 시간에 메신저는 전임사역자가 아닌 일반 성도들이다. 그뿐만 아니다. 교회가 개척된 후로 자발적 성경공부 모임과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전도와 목양을 통해 일터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이들도 성도들이다.

전도사와 목사가 아닌 성도들에게 사역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는 것에 불안감을 드러내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위험요소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플랫폼 처치는 성도를 훈련하고 파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성령으로 보내심을 받은 제자를 세우는 교회, 즉 사도행전의 교회로 서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다. 교회 밖에선 사역할 수 없는 제자들과 함께 어떻게 마지막 대부흥을 맞이할 교회로 설 수 있겠는가.

브리스길라 아굴라 빌립 스데반은 복음 증거에 탁월한 제자이자 교회 개척자들이었다. 이처럼 플랫폼처치는 성도들을 ‘교회 개척자’로 본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봉사의 자리뿐 아니라 사역의 자리로 연결선을 이어줘야 한다. 은혜받는 자리를 넘어 훈련의 자리로, 훈련의 자리에서 교회개척의 자리로 끌어줘야 한다.

더크로스처치는 이런 과정에서 성도들을 실제로 훈련하고 준비시키는 가장 좋은 장으로 ‘셀 모임’(소모임 교회, 흩어지는 교회)을 활용한다.

셀 모임은 세 가지 유익이 있다. 먼저 각 사람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부르심의 공동체다. 우리는 좋은 말씀을 들으러 모이거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모인 무리가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 맡겨진,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처럼 주님이 각 교회에 맡기신 부르심과 소명은 한 성령 안에서 이뤄진 몸으로서 감당할 수 있다. 몸을 이룬 지체들은 작은 교회인 셀에서 삶을 나누며 부르심을 견고히 세운다.

둘째, 셀을 통해 교회의 비밀인 코이노니아를 경험한다. 많은 사람 속에 섞여 극장에 다니듯 교회를 오가는 사람들도 셀로 모일 땐 감춰진 모습이 드러난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오직 예수라는 공통점 때문에 만난 이들은 서로 부딪치고 깎이면서 하나님의 눈으로 나와 이웃을 보게 된다.

이들은 숨기고 싶던 연약함을 고백하고 씨름하며 한 몸 된 지체들의 연약함을 감당할 수 있는 자로 성장한다. 죄의 수치심을 버리고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배우는 자리에서 초자연적으로 연합되는 코이노니아가 발현된다.

셋째, 셀은 각 성도의 은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부르심과 사명을 감당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성도들에게 은사를 나눠주신다.

각양각색의 은사는 교회로 코이노니아를 이루고 사역할 때 가장 건강하고 강력하게 나타난다. 어떤 이는 말씀을 나누고 다른 이는 음식을 대접하며 공동체를 섬긴다. 각 지체가 은사에 따라 공동체를 풍성히 한다.

이처럼 흩어지는 셀 모임을 통해 플랫폼 처치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플랫폼 처치는 셀 교회와 다르다. 플랫폼 처치는 셀 교회를 뛰어넘는다. 플랫폼 처치는 교회 개척자들의 플랫폼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다. 주의 이름으로 모인 증인들의 교회, 훈련되고 회복돼 현장으로 파송 받아 교회를 세우는 성도들의 교회가 플랫폼 처치다.

박호종 목사(더크로스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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