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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손님이 나를 끔찍이 사랑하사

봉달호(작가·편의점주)


“아저씨. 이게 자몽 맛과 레몬 맛 가운데 자몽 맛이 더 좋다고 하던데, 맞나요?” 그게 맞고 틀리고가 어디 있겠나. 개인의 취향인걸. 그냥 미소로만 대답한다. “아저씨. 이거 먹으면 살찌지 않을까요?” 햄버거 먹으면 살찌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아저씨. 이거 정말 유기농 맞아요?” 포장지에 쓰여 있지 않은가. ‘100% 유기농’이라고. “아저씨. 이거 탄수화물 0% 맞아요? 나 탄수화물 섭취 줄여야 하는데….”

유달리 의심 많은 손님이 있다. 질문 많은 손님이 있다. 제품 하나 사면서 예닐곱 가지는 따지고 살핀다. 꼼꼼히 이리 뜯고 저리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뭘 저렇게 의심 많고 확인하고 싶은 게 많은 걸까. 그러다 무릎을 탁, 치면서 깨닫는다. 아, 저 손님은 의심이 많은 게 아니었구나. 질문이 많은 게 아니었구나. 그냥 나랑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거로구나. 어휴, 이놈의 인기란! 사인해 드릴까요?

손님이 또 묻는다. “아저씨. 이거 유통기한 지났어요!” 그럴 리가. 포장지를 보니 ‘20/09/21’이라고 적혀 있다. 2020년 9월 21일이 아니라 2021년 9월 20일이에요. 수입 과자라서 일 월 연도 순으로 읽어야 해요. “아하!” 손님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아저씨 천재로구나’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흐흠. 그러더니 다시 정색하곤 묻는다. “정말 그게 맞을까요?” 철컹. 참을 인(忍)자를 가슴에 새기며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왼다. 이 손님은 내가 좋아서 그러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그러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그러….

유난히 바쁜 손님도 있다. 오자마자 신용카드부터 불쑥 내민다. 대체 무엇을 사셨는지 두리번거리면 그때야 ‘아!’하며 다른 손에 든 상품을 내민다. 한번은 ‘바빠요 바빠!’하는 표정으로 빨리 결제해달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쉬는 시간 끝나기 직전 매점에 달려온 중학생 같다. 삑― 삑― 삑― 상품 바코드를 하나씩 스캔하는 동안에도 ‘빨리요, 빨리!’하는 눈빛으로 계산대 위를 톡톡 쳤다. 그런다고 세상이 빨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참…. 계산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나갔는데, 덩그러니 상품은 두고 갔다. “저기요, 손님! 이건 가져가셔야죠!”하면서 뒤쫓아갔다. 아무래도 이 손님, 나를 좋아하는가 보다.

나를 좋아하는 손님이 너~무 많다. 어떤 손님은 가끔 동전을 듬뿍 들고 와 계산한다. 요즘엔 보기도 힘든 10원짜리 동전과 50원, 100원짜리 동전을 한 움큼 들고 온다. 계산대 위에 동전을 쫙 펼쳐놓고, 종류별로 분류해 금액을 헤아린다. 자기 저금통을 간간이 터는 것 같다. 그래, 모으는 재미보다 터는 재미가 크지. 맞아, 그 재미 좋지. 어쨌든 이 손님이 한번 오시면 얼마간 함께 동전을 세며 끙끙대야 하는데, 역시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 이놈의 인기, 인기! 까다로운 손님일수록, 뭔가 독특한 손님일수록, 그렇게 나는 최면을 건다. 이 손님은 나를 끔찍이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나는 편의점의 영원한 인기남이라고. 자, 사인해 드릴까요?

봉달호(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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