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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미국 복음주의의 변화와 한국교회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미국의 대표적 기독교 잡지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최근 흥미로운 기고문 하나를 실었다. ‘우리는 여전히 복음주의자로 불려야 하는가’란 제목의 글이었다. 내용은 미국 기독교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기 정체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신자를 말한다. 신학적으로는 복음주의적 교파를 아우른다.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한 이 정체성을 왜 새로 정립해야 할까. 글쓴이는 댈러스신학교 라메시 리처드(실천신학) 교수다. 그는 복음주의자(evangelical)란 말 대신 성경주의자(biblical)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리처드 교수가 성경주의자라는 대안적 용어를 제시한 건 미국 복음주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교수는 복음주의가 ‘오염됐다’고 표현했다. 원래 복음주의란 말은 복음을 소중히 여기는 성경적 신앙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국에서 복음주의는 근본주의 기독교, 백인 중심 기독교, 반지성적 기독교 등과 같은 의미로 인식됐다.

미국 복음주의운동은 동성애 합법화나 낙태 허용 이슈에 대해 성경적 목소리를 내며 반대하고 있지만 빠르게 탈기독교화, 세속화된 미국 사회 속에서 그 동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소위 ‘트럼피즘’으로 인해 미국 복음주의는 극우 국가주의 기독교라는 딱지까지 새로 붙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오염된 복음주의와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침묵하던 복음주의 지도자들도 최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기 있는 성경 교사인 베스 모어 리빙프루프미니스트리 대표는 “기독교 국가주의와 트럼피즘에서 돌아서라. 이것들은 미혹적이며 위험하다. 크리스천 국가주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달 24일엔 400여명의 복음주의 목회자와 신학자, 사역단체 대표들이 지난 1월 초 의사당에 난입한 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리처드 교수가 성경주의자란 말을 꺼낸 것도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복음주의가 극우 정치 성향의 이데올로기로 치우치자 진정한 복음주의와 구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복음주의에 대해 권위 있는 정의를 내린 인물은 스코틀랜드 스털링대 역사학 교수인 데이비드 베빙턴이다. 고전 반열에 오른 저서 ‘영국의 복음주의: 1730∼1980’에서 그는 복음주의를 회심주의,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행동주의로 요약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회심을 중심으로 변화된 기독교인의 실존을 중시하며, 십자가를 강조함으로써 일상의 눈물과 고통을 감싸 안고, 행동하는 신앙 곧 뜨겁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전도하고 선교하고 영적 경험을 전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떤가. 한국교회는 서구 복음주의의 행동주의, 즉 선교를 통해 복음주의 신앙 체계를 그대로 전수 받았다. 그래서인지 한국교회의 양상은 미국교회와 닮았다. 대각성운동과 평양 대부흥, 자유주의 신학의 위세와 복음주의 교회의 분리, 마틴 로이드 존스·존 스토트·칼 헨리와 80년대 이후 한국 복음주의운동, 그리고 트럼피즘과 태극기부대까지 그 동선은 사뭇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도 복음주의자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 규정이 필요한 걸까. 지금 한국교회에 새로운 용어가 시급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복음주의 정신 회복과 재인식이 급선무로 보인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교회와 기독교인이 받은 상처는 예상보다 심각한 것 같다. 목회자들은 온라인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 격무로 지쳐 있고, 성도들의 신앙은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다.

주변 목회자와 성도들을 만나보면 교회가 나아갈 길에 대한 우려를 전하는 분들이 많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탄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처럼, 우리도 그저 묵묵히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한길 가신 그분처럼.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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