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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핵 억지력, 선택의 순간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지난 1월 미국 전략사령부(STRATCOM) 찰스 리처드 사령관은 미 방위언론사협회 인터뷰에서 핵 능력을 보유한 적대 세력인 두 국가의 전망에 대해 언급했다. 두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한 달 뒤 리처드 사령관은 미 해군연구소가 발행하는 잡지 ‘프로시딩스’에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국익을 훼손하기 위해 핵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재래식 전쟁의 패배가 그들의 국가나 체제를 위협할 것이라고 러시아나 중국이 인식한다면 지역적 위기가 핵무기 사용을 촉발하는 전쟁으로 급속하게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미군은 주요 가정을 ‘핵 사용은 불가능하다’에서 ‘(이제) 핵 사용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 문장을 제대로 읽었는지 세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20여년 동안 군사전략, 핵 억지력에 몰두했던 전문가로서 이 문장들이 어떤 심각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기에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리처드 사령관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한다는 것은 핵 억지 전략의 실패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냉정한 핵 억지 철학이 이제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감정적인 전쟁 언어로 바뀌고 있다. 이것은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국이 전통적 전쟁의 개념을 핵전쟁에 적용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군사력전략(counterforce strategy) 개념으로 적의 군대를 핵으로 파괴시키고, 상쇄전략(countervailing strategy) 개념으로 핵전쟁을 이긴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예가 케네디 행정부의 단일통합작전계획 62(Single Integrated Operational Plan-62)다.

한국의 존립은 핵 억지 전략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기에 이런 전략적 사고의 전환은 매우 우려스럽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핵무기는 억지를 생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억지력은 핵무기를 감당하기 위해 존재한다. 핵 억지력의 존재 이유는 핵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억지력은 본질적으로 역설적 전략이다. 사용하지 않을 무기를 만들고 만약 사용하게 되면 억지 전략은 사라지게 된다.

한반도의 전쟁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핵전쟁은 더더욱 상상하는 것으로도 공포 그 자체다. 재래식 전쟁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그러나 핵전쟁에서는 승자가 없고 오로지 패자만 있다. 미국의 최고 전략핵사령관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면 한국은 이제 독자적 핵무기 생산능력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원칙적인 방식을 따져봐야 할 때다. 정치적 실행 의지가 그런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필수 요소지만 외교정책 및 기술 전문가들의 전략적 사고와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 그 첫 단계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 등 주요 조약의 의무와 예산을 충분히 고려해 핵 연료주기 등을 자체적으로 완벽히 연구·습득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타당성조사에 착수하는 것이 급선무다. 핵 지휘통제 시스템, 작전 독트린, 표적 획득 시스템, 안전하고 보안이 철저한 저장시설, 핵 기술자와 보안 인력에 대한 교육 등에 대한 타당성조사도 포함돼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억지력이 없다. 상대방이 감당해야 할 가공할 핵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독립적 억지력을 세워 사용하지 않을 핵무기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해도 진정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은 그야말로 단기간에 완성할 수 없는 방대하고 정교한 작업이다. 바로 지금이 그 시작을 검토할 때다.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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