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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 칼럼] 20대 대선 D-1년


유권자 선택이 항상 최선의 결과 담보하지는 않아
트럼프의 미국, 보우소나루의 브라질서 민주주의 후퇴 경험
우리의 경우 형식은 갖췄으나 실질적 민주주의 길은 멀어
시민이 깨어있어야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지도자 탄생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대표직을 내려놨다. 20대 대통령선거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다.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 1년 전 물러나야 한다. 20대 대선 투표일은 내년 3월 9일이다. 당장 다음 달 7일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관심이 쏠려 대선 관심도는 덜한 편이다. 그러나 보선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정국이다.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3요소로 구도, 인물, 바람을 꼽는다. 20대 대선구도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등판으로 방정식이 복잡해졌다. 그의 출마를 상수로 가정했을 경우 제1야당 후보로 나서느냐, 제3지대 후보로 나서느냐에 따라 양자 또는 다자 대결구도 양상을 띤다. 그가 태풍의 핵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 내년 대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는 20~30년 전만 해도 인물과 정책을 후보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정당은 후순위였다. 그러나 최근엔 정책과 더불어 정당이 가장 우선적 고려 대상이 되고 있다. 후보들 공약이 차별성을 상실하면서 인물보다 정당을 우선하는 것 같다. 실제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여당과 야당 공약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정당 및 후보의 선택 기준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모델이론이 ‘회고적 투표’ ‘전망적 투표’다. 회고적 투표는 집권세력의 실적과 성과를 보고, 전망적 투표는 앞으로 어떤 후보와 정당이 더 잘할까를 판단해 투표하는 경향을 말한다. 보통 총선에선 회고적 투표 경향이, 대선에선 전망적 투표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전망적 투표 경향이,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이뤄지면 회고적 투표 경향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합리적 유권자는 한 단면만 보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종합해 판단을 내릴 게다.

유권자 선택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차악도 아닌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아돌프 히틀러도 유권자의 선택이었다. 유권자 선택에 의해 탄생한 정권에서도 지도자 성향에 따라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브라질에서 경험했거나 경험 중이다. 두 사람은 집단지성의 산물인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 과학보다 음모론을 신봉했다. 그 결과 미국은 극도의 분열과 증오, 적대의 늪에서 허우적거렸고 조 바이든 정권이 들어선 지금도 트럼프가 남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브라질 민주주의의 퇴보는 다큐멘터리 ‘The EDGE of DEMOCRACY’(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대가는 혹독하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시 취약하다. 이명박 시절 국가정보원의 광범위한 사찰이 자행됐고 박근혜 시절엔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문재인정부에서조차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시되기 일쑤다. 이제 한국은 후진국형 쿠데타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하지만 촛불정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됐다면 1980년 봄의 실패한 민주주의가 재현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나브로 형식적 민주주의 틀은 정치학 교과서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에 이르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의 경우 누군가는 민주주의 발전으로 여기는 반면 누군가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파괴로 정의한다. 수사·기소권 분리는 정책 의지의 영역인데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돼 버렸다. 이 논제는 내년 대선에서 선택의 주요 잣대 중 하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현재 가장 유력한 야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의 사퇴 이유가 여기에 있어서 그렇다.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다. 그러나 쿠데타가 발발한 미얀마를 보면서, 공안통치가 횡행하는 홍콩을 보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미얀마와 홍콩의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는 유사 민주주의다. 이들 사례에서 반쪽짜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지 보여준다.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는 정치 사회 모든 영역에서 오늘보다 나은 인간다운 삶을 사는 내일을 만드는 데 있다. 이 명제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를 뽑는 5년 주기 행사가 대선이다. 시민이 깨어 있어야 이런 지도자를 갖는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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