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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밥상+머리] 혼자 살면서 그렇게 잘 챙겨 드시나요?


요리를 하고 특히 플레이팅에 공을 들이는 내게 지인들이 종종 묻는다. “혼자 살면서 어쩜 그렇게 잘 챙겨 드시나요?”

SNS에 올린 인증샷을 보고 칭찬의 의도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이 말 속에는 비혼자나 1인 가구는 무언가 결핍돼 있거나 온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내재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혼자 살면서 어쩜 업무를 그리 잘 챙기시나요?”라거나 “혼자 살면서 운전을 잘 하시네요”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혼자라고 잘 챙기지 못할 리가 있는가? 2019년 기준으로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선 이 사회에서 “혼자 먹을 때면 저는 늘 대충 먹거든요”라고 말하는, 혼자 살지 않는 이들의 말대로 먹고살 수는 없다.

식사는 함께하면 맛있다. 맛있는 음식을 서로 맛있다고 말하며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맛있어!’는 형용사라기보다는 감탄사로 봐야 할 때가 더 많다. 좋은 곳에서 좋은 이들과 좋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렇긴 해도, 장담하건대,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다. 혼자 먹는 거니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먹을 만큼만, 즉 지나친 요리 노동에 피폐해지지 않을 만큼의 노동력으로 얻을 수 있다. 1인분이니까 조금 비싼 재료도 망설이지 않고 고를 수 있다. 셰프처럼 멋지게 음식을 담아내는 것보다 푸짐한 것이 좋다고,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눈치 없는 자도 없으니, 플레이팅은 그만큼 우아하게! 영화나 여행을 오롯이 혼자 즐기는 것처럼 혼술 혼밥 요리를 하고 스스로 즐기는 밥상머리가 한 끼를 대충 ‘때우거나’ ‘해치우는’ 일과 어찌 같을 수 있으랴. 3월부터 요리에 대해 새 글을 쓰는 이유이다.

토요일 브런치라면 간단히 양파수프를 해보자. 늘 조연으로 쓰이는 양파가 주연이 돼 무르익는 요리. 양파는 얇게 채썰어 버터에 볶는다. 양파를 볶다가 소금을 살짝 뿌려 양파가 갈색이 날 때까지 오래 볶는다. 캐러멜라이징이 충분히 됐다 싶으면 물을 적당량 넣고 바글바글 끓인다. 치킨스톡이나 채수를 넣으면 더 깊은 맛이 나지만, 물로도 충분하다. 이때쯤 주방에 풍기는 냄새는 추운 날씨에 거리를 헤매다 갑자기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할아버지의 집으로 뛰어 들어간 느낌이 들게 한다. 달짝지근하고 깊고 순박하고 따뜻한 풍미. 그윽하게 주방 전체에 퍼진다. 요리 초보라도 그 냄새가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고 불을 끌 시간임을 알려줄 것이다.

구운 바게트 빵과 그뤼에르 치즈를 스프 위에 얹어 오븐에 돌리는 게 정석이지만, 그저 따로 빵을 찍어 먹어도 좋다. 양파수프를 먹으며 오랜만에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주제가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알프스, 산새들 놀러오는 즐거운 마을에’로 시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알고 있다면 치즈를 올리지 않은 양파수프의 깊은 맛을 아는 나이라는 것도. 그런 나이일수록 좋은 것을, 멋지게,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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