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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문화스케치] 속하는 경험


클럽하우스 열풍이다. 흔히 말하는 스포츠 클럽의 회관이 아니다. 오디오 채팅 사회 연결망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다. 가입하면 누구에게 초대를 받았느냐에 따라 관심 있을 만한 사람들이 추천된다. 내가 팔로우한 사람이 주도하는 행사가 애플리케이션 내 달력에 나타난다. 초대를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고, 현재는 아이폰 등 iOS 사용자에게만 오픈돼 있다. 두 번의 장벽이 있는 셈이다. ‘그림의 떡’을 맛보기 위해 공기계를 구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클럽하우스 초대권을 판매하는 이도 등장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그들만의 열풍인 셈이다. 가입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소용돌이다. 홈페이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미니홈피와 온라인 카페, 블로그가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의 법석임과는 사뭇 다르다. 그때는 누구든 가입하거나 접속하거나 나만의 공간을 개설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폐쇄 구조 안에 어떻게든 발 들이는 게 전제조건이 된다. 채팅방을 검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개인 정보 공개 여부를 내가 결정할 수도 없다.

문자 채팅과 마찬가지로 예의 없는 사람이 출몰하기도 하고 허위 프로필을 기재하는 사람도 있다. 태생적으로 청각장애인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대화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폐쇄성 때문이다. 폐쇄성이 매력 자본이 되는 것이다. 속하는 경험은 중요하다. 이는 서비스를 선점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유행하는 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한다. 실시간 오디오 대화를 기반으로 한 클럽하우스는 기존의 SNS와는 결이 다르다.

내 프로필에는 2월 4일에 누구로부터 추천받았다고 쓰여 있다. 추천인을 지우거나 숨길 수는 없다. 연결 가능성을 제공한 자로서 그는 내 프로필에 영영 남아 있을 것이다. 틈틈이 클럽하우스를 접속하니 방의 성격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개설한 방, 어떤 주제를 정해 놓고 거기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 낭독이나 연주를 들려주는 방,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이끄는 방, 친목 도모를 위해 만들어진 방 등이 있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인이 가입하면 클럽하우스 내에서 알림이 왔다. He도 아니고 She도 아닌 They라는 대명사가 사용된다. 생물학적 성이 어떤 이를 규정할 수 없다는, 성 중립적 표현인 셈이다. 팔로우한 사람이 방을 개설해도 알림이 왔다. 습관적으로 그 방에 들어가 귀 기울였다. 도움이 되는 내용은 메모하고 그저 시시한 대화를 들으며 웃기도 했다. 적막한 일상에 적극적으로 돌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새벽에도 알림은 계속됐다. 일상에 돌무더기가 쏟아지는 것 같아 알림 설정 거부 버튼을 눌렀다. 그사이 내가 모르는 많은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개중에는 놓치기 아까운 대화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며칠 전에는 ‘종이 동물원’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SF 작가 켄 리우가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때 빼어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매끈한 통역을 선보였던 샤론 최가 통역을 맡았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지 못해 아쉽지만, 그 시간에 나는 나대로 시간을 통과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실시간을 산다.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이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클럽하우스 채팅방에는 중재자(moderator)라고 불리는 이가 있다. 사회자 역할로,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를 이끄는 일을 해야 한다. 채팅방에 참여한 이는 손을 들고 중재자로부터 발화자(speaker)의 권한을 부여받기도 한다. 발화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떼는 것을 반복함으로써(이는 클럽하우스에서 박수치는 행동으로 인식된다) 지지와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일주일 만에 클럽하우스에 접속했다. 거기는 말이 넘치는 곳이었다. 이야기가 줄곧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자신만의 마이크를 갖고 싶어 했다. 자신이 호감을 갖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을 두드리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했다. 사회의 축소판이 거기 있었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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