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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반기문의 실패, 보수의 몰락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017년 1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지 한 달 지난 시점이었고,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졌을 때다. 반 전 총장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기 대권 2강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갤럽 1월 2주차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를 보면 문재인 31%, 반기문 20%였다. 귀국 전 반 전 총장 지지율은 문 전 대표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민주당은 문재인, 보수당은 반기문 구도였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귀국 20일 만인 2월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의 20일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조직도 없었고, 돈도 없었고, 준비도 부족했음이 드러난 시간이었다. 발언은 정제되지 못했고, 행동은 실수가 부각됐다. 작은 것도 크게 보도됐다. 새누리당 입당도, 제3지대 형성도 여의치 않았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애국심이 인격 살해와 가짜 뉴스로 폄훼됐다”고 분노했다. 뜻을 펴보기도 전에 언론과 반대당의 포화를 맞고 백기를 들었던 셈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실상 정치 참여를 선언하자 반 전 총장이 자주 소환된다. 민주당 사람들은 “윤석열은 반기문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한다. 검증되지 않은 외부인의 정치가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사람들은 “윤석열은 반기문과 다르다. 전투력이 세다”고 말한다. 정권 실세들과 불화했던 윤 전 총장과 외교관의 길을 걸어온 반 전 총장은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양쪽 다 자신들의 희망이 섞인 말일 뿐이다.

현 시점에서 윤 전 총장의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다. ‘윤석열의 정치’는 세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고들 한다. 윤 전 총장이 언론과 민주당의 검증 공세를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특수통 검사 출신 윤 전 총장이 국가의 미래 비전과 실현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국민의힘에 입당하든 제3지대를 형성하든 정치 세력을 모을 수 있을지다. 각각 검증, 비전, 세력의 문제인데 셋 다 어려운 일이다.

반기문의 실패나 윤석열의 도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지만 짚어봐야 할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불모의 보수 정당이다.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새누리당은 후보를 잃은 불모의 땅이 됐다. 그 직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32%, 안희정 10%, 이재명 7%였다. 보수 후보로는 황교안 9%, 유승민 3%였고 제3지대를 지켜온 안철수 7%였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2017년 19대 대선은 여야의 싸움이 아닌 민주당 내부의 싸움이 됐다.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의 싸움이었다.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의 한나라당 내부 경선이 사실상 대선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변명의 여지는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19대 대선 이후 4년이 지난 지금도 보수 정당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정당 지지율이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고, 윤 전 총장을 제외한 보수 후보들의 차기 대선 지지율은 5%를 넘지 못한다. 대선 1년 전 지지율이 5%를 넘지 못한다는 것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대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미다. 19대 대선 1년 전인 2016년 5월 2주차 갤럽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 결과는 안철수 20%, 문재인 18%, 오세훈 9%, 박원순 6%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최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실망했지만 국민의힘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얘기했다. 국민의힘은 4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유권자들이 쉽게 선택하기 힘든 정당이다. 지난 4년 동안 보수 정당은 자성도 없었고, 비전도 없었고, 새로운 정치인을 키워내지도 못했다. 독주하는 민주당을 제대로 견제한 것도 아니었다. 선택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윤석열의 도전이 성공할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도전이 실패할 경우 국민의힘은 다시 불모의 정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이 실패하면 정치권에서는 개헌, 정계 개편, 제3의 후보론 등이 활발히 논의되겠으나 논의는 논의에 그칠 것이다. 국민의힘을 어떤 보수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실상 양당 정치 구도하에서 보수의 축을 담당하는 정당이 대선 때마다 불모의 지대로 남아 있는 것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윤석열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문제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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