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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저항없는 헌법은 죽은 법

신봉기(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정신 나간 운전자가 인도로 차를 질주할 때 목사인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자문했다. 자신은 목사지만 희생자들의 장례나 유가족들 위로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에 뛰어올라 그자로부터 핸들을 빼앗겠다고 했다.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결국 교수형에 처해지고 말았지만 그가 사망한 지 20여일 만에 제3제국은 패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를 말했을 때 내겐 본회퍼의 운전자가 오버랩됐다. 트럼프가 물러나고 운전자도 제 역할을 못하는 지금까지도 그 차에 올라타 미친 듯이 함께 폭주하겠다는 자들이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1980년대 독일의 한국 신학생들은 홀린 듯 감탄을 연발하며 본회퍼 연구에 빠졌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자유에 굶주렸던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광주 유혈진압으로 이어졌던 오월의 봄, 그들은 광화문과 서울역에 몰려나가 저지하는 경찰과 최루탄에 맞서 독재타도를 외쳤던 당시의 무용담을 쏟아내었고 마음껏 독재자를 비판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교수 목사가 된 그들의 소식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글로써는 그들을 찾을 수가 없다. 내게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고 고국을 떠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던, 분노하던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는가.

권력에 부역하는 자는 헌법을 논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겐 손에 쥐어진 헌법이 단순한 선언문에 불과할 뿐 구속력이 없다. 그들은 헌법 이념과 가치에 대한 해석도 견강부회로 한다. 신학자가 성서를 잘못 해석하면 이단이 되듯이 권력집단이 헌법을 왜곡하면 전제권력이 된다. 헌법 이념과 본질적 가치는 권력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헌법에 반하는 권력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이 변함없는 세계 역사였다. 형식적 법치에 헌법가치가 붕괴되었듯이 헌법을 무시하면 전제적 독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헌법을 무시하면 독재와 친밀해진다. 형식적 법률에 매몰되면 부역자들의 말이 진리로 들린다. 부역자 소리가 듣기 싫다면 독재와 전제를 거부해야 한다.

헌법과 독재는 병립할 수 없다. 헌법을 존중한다면 저항은 본성이다. 권력자들은 독재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스스로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착각한다. 그들의 정의 관념에서는 공의를 기치로 내세우면서도 걸리적거리는 것은 행정권한으로 밀어붙이고 그것으로 안되면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치워버린다. 역사를 새로 쓰듯 사문화된 형벌 규정을 적용하고 없는 형벌권한은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국민을 억압하는 행위가 반복되면 그것이 바로 독재인 것이다. 언젠가 사막의 모래늪과 같이 서서히 독재의 길로 빠져든 것임을 깨달을 때면 이미 상황은 종료다. 도대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내게 수사를 좁혀오는 검찰로부터 고위공직자 수사권을 빼앗아 공수처를 만들고, 중요범죄 수사권을 빼앗아 중수청을 만들고, 수사권조차 주기 싫다며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하려는 발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의자 피고인이 주도하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우려스러운데 대통령 남은 임기는 짧고 국회의원은 길다며 대통령의 속도조절 주문조차 무시되는 것은 정권의 위기감을 보여준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도하는 자들은 오히려 양반이었다. 초한전쟁 당시 애절한 퉁소 가락으로 향수병을 자극해 군졸들이 창검을 버리고 전장을 떠나게 하여 십만대군 항우를 꺾고 유방에게 대승을 안겨준 한신이 결국 토사구팽당했던 사건을 기억한다면 헌법을 무시하는 집단에 속한 많은 공직자들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겠다며 법리 안에서 투쟁하다가 결국 쫓겨나다시피 사퇴한 윤석열 검찰총장, 법관 출신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을 연구했던 김진욱 공수처장 등 헌법을 알고 헌법을 준수하며 지키겠다는 일념에 서 있는 이들은 전제적 권력의 무도한 반헌법적 행위에 쉽사리 곡학아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공정과 정의가 왜곡되고 헌법이 무시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방관하는 다수의 법조인과 법학자들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권력과의 다툼에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전문가들의 침묵은 결코 미덕이 될 수는 없다. 헌법은 투표든 행동이든 국민의 저항 속에서 수호됐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봉기(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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