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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황금광시대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금광을 찾는 인파가 끝이 아득한 알래스카 고원을 가로지른다. 눈길 옆에 사람이 쓰러져도 어느 하나 시선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금을 찾는 과정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삽으로 내리친다. 찰리 채플린의 1925년작 ‘골드러시’의 장면이다.

10년 뒤 일제 치하에서 김유정이 쓴 소설 ‘금 따는 콩밭’에도 닮은 군상이 등장한다. 금이 나온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가난한 소작농이 일생 가꾼 콩밭을 뒤엎는다. 빚까지 내가며 땅을 뒤져도 금맥은 나오지 않고, 그는 분풀이로 아내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섣부르게 농사만 짓고 있다간 결국 비렁뱅이밖에는 더 못 된다. 얼마 안 있으면 산이고 논이고 밭이고 할 것 없이 다 금쟁이 손에 구멍이 뚫리고 뒤집히고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그때는 뭘 파먹고 사나.” 소설 속 넋두리는 오늘날 흔한 ‘벼락거지’ 탄식과 닮았다. 너도나도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됐다는 얘기 와중 자주 들린 한숨이다.

소설이 쓰인 1930년대 한반도는 ‘황금광시대’라 불렸다. 기록적 풍년으로 쌀값이 폭락한 당시 농민들 눈에 금빛 신화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치솟는 금값을 바라보고 광산에 모인 이들은 결국 대부분 빚을 지고 길에 나앉았다. 골드러시가 쓸고 간 19세기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유령 도시와 강도·살인이 속출했다.

골드러시 당시 제임스 K 포크 미국 대통령은 광풍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소문으로만 돌던 서부 금광 발견 소식을 의회 연설에서 공인해버린 일이었다. 그때껏 그가 추진한 서부 개발은 자신이 부추긴 골드러시 덕에 가속이 붙었다. 조선에서도 양상은 같았다. 중·일전쟁을 벌이던 일제는 군수물자를 조달하려 가난한 조선 농민을 금광으로 끌어들였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비슷한 일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말 직접 금융사 영업점에서 펀드에 가입해 개인들의 주식 투자를 독려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연초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가 열린다”며 ‘동학개미’를 치켜세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행동이 개인투자자에게 어떤 신호로 작용했을지는 첨언이 불필요하다.

앞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펀드에 가입하며 투자를 독려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는 주식시장이 국제통화기금 사태와 금융위기로 부진할 때 혹은 시장에 개인투자자 비중이 유독 낮을 때였다. 뚜렷한 호재 없이 개인투자자가 우려를 살만큼 밀려들어온 시점에서 대통령의 행동이 굳이 필요했나 알 수 없다.

사행산업 중독 예방·상담을 맡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는 지난해부터 주식 관련 상담이 늘었다. 2018년부터 2년간 한 건도 없던 십대들 상담이 지난달까지 28건 생겼고, 이십대는 347건으로 평시 3배를 넘는 추이다. 이들의 여유 자산이 한 해 만에 곱절 늘었을 리 없으니, 무리하게 돈을 끌어 주식에 붓다 생긴 문제라는 게 합당한 추론일 테다.

지난 11일 기준 대통령이 가입한 뉴딜 펀드 5개 수익률은 2개월 새 널뛰기 장세로 최대 마이너스 11%까지 떨어졌다. 한데 대통령이 빚에 고민하거나 중독 상담을 받진 않을 테다. 제아무리 전문가라도 매번 수익을 장담 못 하는 게 주식시장이다. 잔치는 영원할 수 없고, 상승장도 끝이 있다. 무책임한 독려 탓에 쌈짓돈을 긁어 뛰어든 ‘영끌’ 청년들을 그때 가서 누가 살필까. 물론 주식투자는 자기 책임하에 해야 한다지만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주식에 사람이 몰린 건 대통령이 강조한 ‘노동존중사회’가 이뤄지긴커녕 노동의 가치가 시궁창에 처박혀서이기도 하다. 대기업 하청 노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나고 택배 노동자가 숨지는 반면 공공기관 직원이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로 떼돈을 번다. 통치자라면 왜 기초자산조차 축적 못 한 청년들이 노동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일확천금 꿈에 몰두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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