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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벌집 투기

라동철 논설위원


한두 명이 겨우 생활할 수 있는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을 벌집이라고 한다. 1960~80년대 서울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주거공간이 대표적이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은 주로 벌집에서 살았다. 단층 혹은 2층짜리 단독주택의 6.6㎡(2평) 남짓한 10~30여개 쪽방마다 2~5명이 칼잠을 자며 함께 생활했다. 화장실과 세면장 겸 빨래터는 공동으로 사용했다. 방을 잘게 쪼개 더 많은 사람에게 세를 놓으려는 집주인과 주거비를 아끼려는 세입자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공단 주변에는 벌집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닭장집’으로도 불린 벌집은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재개발 등으로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고 일부 쪽방촌에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다.

LH 투기 사태가 불거진 후 벌집이 다시 세간의 입길에 소환됐다. 국가산업단지(산단) 예정지에 벌집들이 난립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전통적인 벌집과 달리 개발 예정지에 투기 목적으로 지은 조립식 주택을 가리킨다. 세종시 연서면 스마트국가산단 후보지에는 샌드위치 패널 벌집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다. 2018년 후보지로 선정되기 몇 달 전 사들인 부지를 쪼개 똑같은 형태로 지은 집들이다. 농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에 대형 축사가 있는 걸 보면 주거용은 아닌 것 같다. 충북 청주시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단 조성 예정지 일대에도 벌집들이 무더기로 조성돼 있다. 청주시 청원구 넥스트폴리스 산단 조성지에도 계획이 알려진 지난해 초 이후 조립식 주택 50여채가 속속 자리를 틀었다. 전국이 벌집 투성이다. 대부분 토지 보상금은 물론이고 이주자택지 입주권(속칭 딱지)까지 노리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 예정지 일대에 무더기로 들어선 벌집은 농지에 빽빽이 심은 속성 재배 묘목들과 함께 대표적인 투기 흔적이다. 증거가 생생한 만큼 정부가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전국 각지의 산단 예정지 일대에 대한 토지 거래 및 건축 전수조사를 실시해 투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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