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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맹인을 고치신 기적 (1)

요한복음 9장 1~7절


요한복음에는 기적, 이적이란 단어가 없다. 모두 ‘표적’으로 사용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기적과 이적은 초자연적 현상에 집중된 단어이다. 하지만 표적은 사인(sign)이란 말로 방향 징후 조짐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두고 향해 가며, 나중에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요한복음에 나온 모든 표적은 예수님을 향해 간다. 그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보여준다. 이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는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설명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표준이다.

이 본문의 맹인은 날 때부터 맹인이다. 이 말은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른다는 말이다. 그는 빛이 뭔지 모른다. 원래 보다가 안 보이게 됐으면 빛을 알고 빛이 주는 혜택을 잘 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그에게는 예쁘다, 못생겼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어둠을 당연하게 알았던 그이기에 그는 자신의 처지가 이토록 비참하다는 것을 잘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빛이 주는 유익을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당시 유대인을 대표하는 모습이다. 이 맹인을 고치기에 앞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며 예수님의 말을 이상하게 여겼다.(요 8장)

이것이 나면서 맹인된 자의 모습이다. 그들은 사탄의 세력 아래, 율법의 족쇄 아래 있는 종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영적인 맹인인 줄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먼저 다가오셨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사건이다.

어떤 방법으로 맹인을 구원했는가. 예수님께서 땅에 본인의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그의 눈에 발라서 고쳤다. 흙은 곧 아담인 ‘사람’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그의 침과 인간을 상징하는 흙이 섞여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우리의 눈이 떠진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얻게 될 구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부분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을 정작 맹인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저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치료라는 결과를 선물로 받았을 뿐이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이다. 우리는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몰랐다. 그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과 그 처절한 십자가의 피 흘림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 맹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벌어졌던 일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맹인은 고침받을 당시에도 고치는 이가 누군지 몰랐다. 심지어 고친 후에도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냥 단지 선지자라고 여겼다. 후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셔서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고 맹인은 그 만남 이후 다른 삶을 살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 2000년 전 사건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고,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시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 보이신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저 없이 그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 그의 발에 입 맞추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영안이 열리고, 우리를 향해 큰 가슴을 열고 다가오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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