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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부부 관계와 행복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가누며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 배우자가 야릇한 눈빛을 보낸다. 섹스를 간절히 원하는 눈치다. 하지만 당신은 생각이 별로 없다. 온종일 여러 가지 일로 바쁘고 힘들었다. 그냥 자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응하겠는가 아니면 거절하겠는가?” 캐나다 토론토대학 심리학과 에밀리 임페트 교수가 부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던졌던 질문이다.

부부는 살며 크고 작은 문제를 맞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적응도 하고 때로는 포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적응이 안 되고 포기도 힘든 문제가 있다. 바로 섹스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부부가 섹스 문제로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섹스 문제의 핵심은 성욕 차이에 있다. 수많은 부부가 서로 다른 성욕의 크기로 갈등을 경험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섹스를 더 자주 하기 원하고 상대 배우자는 덜 하기를 원한다.

그럼 무엇이 섹스 문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왜 그리 적응하기도, 포기하기도 어려운 것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섹스가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서운한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꼭 채워져야 하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와 배려만으로는 완전히 해결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대체물이 없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다른 상대를 통해 채울 수가 없다. 배우자를 통해서만 채울 수 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배우자를 통해서만 채울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부부를 부부답게 만들기도 하고 부부의 사랑을 고귀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조건은 부부 중 한 사람, 특별히 섹스를 더 자주 하고 싶은 사람을 출구 없는 골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섹스 문제의 칼자루는 섹스를 덜 하고 싶은 자가 갖게 된다. 섹스를 더 자주 하고 싶은 자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없던 애교까지 부려야 한다. 결국, 을로 전락하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섹스를 구걸해야 한다. 구차하고 치사하다고 버릴 수도 없다. 본능적 욕구이고 상대 배우자를 통해서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섹스를 덜 하고 싶은 자가 마음 편한 것도 아니다. 괴롭기는 매한가지다. 피곤한 건 둘째치고 솔직히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다. 마음이 당기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얼마나 하기 싫었으면 우리 선조들이 ‘밤일’이라고 했겠는가. 아주 귀찮은 일일 뿐이다. 거사 전에 준비할 일도 많고 거사 후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한밤중에 잠 안 자고 뭐하는 짓인가 싶다. 피곤하면 피곤할수록 더 하려는 배우자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준비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데 부럽기까지 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칼자루를 가진 배우자는 상대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해줄까, 말까?’의 딜레마에 빠진다. 부부로 살면서 매번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항상 응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임페트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하고 싶지 않더라도 응하는 것이 부부 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상대방이 그로 인해 성관계와 부부 관계에 더 행복해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그로 인해) 본인도 성관계와 부부 관계에 더 만족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었다.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억지로 (의무감으로) 응할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상대도 알 것이다!) 상대 배우자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기꺼이 응할 때만 본인에게도 만족감을 줬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배우자를 위한 적극적 태도가 필요한 듯하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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