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 숨결 그리워 옅은 봄바람에 숨어온 남도의 매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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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에는 ‘산청 3매’와 ‘남사예담촌 5매’가 봄을 알린다. ‘산천 3매’ 중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는 시천면 산천재 앞 ‘남명매’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매화는 지조와 절개의 꽃이요, 선비의 상징이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가득 채우지만 결코 기품을 잃지 않는다. 난(蘭)·국(菊)·죽(竹)과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라 일컫기도 하고 불로상록(不老常綠)의 솔·대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기도 한다.

매화의 고향은 중국 쓰촨성이다. 우리나라에 매화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매화는 고려시대 후기부터 선비들의 작품에 등장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수령이 150년 넘은 것을 고매(古梅)라 부른다.

옛 문헌에 매화는 다양하게 구분된다. 꽃잎 수가 5장이면 홑매, 10장이면 겹매, 여러 겹이면 만첩매다. 홑매는 색상에 따라 백매·청매·홍매로 나뉜다. 유달리 붉으면 흑매 혹은 비매라 칭한다. 심은 사람이 직접 이름을 짓는가 하면 후대 사람들이 심은 이의 호를 따거나 일화를 배경으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경남에 ‘산청 3매’가 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산천재 앞마당에 심었다는 남명매, 남사예담촌의 원정매, 단속사지의 정당매다. 원정매와 정당매는 후계목이다. 원래의 나무는 고사하고 대신 후계목이 대를 이어 한 자리에서 650년 이상 꽃을 피우고 있다.

남명매는 지리산 기슭 산청군 시천면에 자리한 남명 선생의 유적지 산천재에서 볼 수 있다. 그는 퇴계 이황 선생과 함께 영남학파의 거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벼슬에 여러 번 제수됐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1561년 환갑의 나이에 산청에 와서 산천재를 짓고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어 마지막 거처로 삼았다.

산천재는 서너 칸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건물이지만 앞마당에 서면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천재 앞 매화나무는 나이가 450년을 훌쩍 넘어 가지 일부는 말라 죽고 또 다른 가지는 시멘트로 보완했지만 절개와 기품을 자랑한다. 남명매는 꽃잎이 눈처럼 흰 백매다. 해마다 3월 어김없이 맑고 눈부신 꽃을 피운다. 매화 향이 유독 짙다. 남명 선생의 강직한 정신과 올곧은 성품을 매화나무에서 배어 나오는 듯하다.

남명 선생은 왕에게 목숨을 건 직언도 했다. 1555년 단성현감의 벼슬을 사양하며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 ‘단성현감사직소(단성소)’에는 그의 성품이 잘 반영됐다. ‘나랏일은 이미 그릇됐고 나라의 근본이 망했고 하늘의 뜻도, 인심도 이미 떠났다’며 부패한 조정과 원칙 없는 임금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명종이 크게 화를 냈지만 신하들의 만류로 처벌하지 못했다. 조식은 오히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됐다.

단성면 운리 정당매.

정당매는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보물 72·73호) 인근에서 볼 수 있다. 고려후기와 조선초기에 걸쳐 벼슬을 지낸 통정공 강회백(1357~1402)이 유년시절 심은 매화나무다. 그는 훗날 종2품에 해당하는 ‘정당문학’이라는 직위에 올랐다. 후세에 그가 심은 매화나무를 정당매로 불렀다. 정당매가 지금껏 살아있었다면 수령 650년을 넘었겠지만 원래의 나무는 2014년에 고사하고 후계목이 대신 꽃을 피운다.

남사예담촌 하씨 고가의 원정매.

원정매는 단성면의 남사예담촌의 하씨 고가 사랑채 앞뜰에 있다. 고가의 주인이었던 고려후기 문신인 원정공 하즙(1303~1380)이 낙향해 왕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집 안에 심은 나무다. 그의 시호 ‘원정’을 따서 원정매라 이름 붙었다. 원래의 나무는 2007년에 고사하고 후계목이 연분홍 겹꽃잎을 피워내고 있다.

남사예담촌 최씨매.

남사예담촌에는 원정매를 포함하는 ‘5매’가 있다. 최씨매, 이씨매, 정씨매, 박씨매다. 고택 소유자 성씨를 붙인 이름이다. 최씨 고택은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 옆에 있던 400년 된 매화나무가 고사한 뒤 심은 후계목이 대를 잇고 있다. 하지만 매화 송이가 몇 송이밖에 안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주차장 바로 앞 조선개국공신 이제의 후손들이 재실로 사용하는 남호정사 마당에 있는 이씨매는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으로 이름났다.

정씨매는 사양정사 선명당에 자리한다. 150여 년 된 매화로,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운다. 박씨매는 남사천 건너 이사재(尼泗齋)에 있다. 이사재는 이순신 장군이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으로 가던 정유년(1597년) 6월 1일에 하룻밤 유숙했던 곳이기도 하다.





산청=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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