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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획된 성범죄 ‘온라인 그루밍’의 덫

조주은 경찰청 여성청소년안전기획관


청소년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공감과 지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래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청소년들은 온라인에서 만난 성인으로부터 잠시의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러다가 성(性)과 관련된 조건들과 함께 “네가 원하는 것을 사줄게” “용돈 줄게” “재워 줄게” 등의 달콤한 제안을 받는다.

이같이 정신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청소년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그루밍(grooming)이라고 한다. 원래 그루밍은 마부(groom)가 말의 털을 빗겨줌으로써 말의 외모를 치장하고 친밀감을 쌓는 행위라는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마부의 그루밍과 달리 최근 문제 되는 온라인 그루밍은 성착취, 성매매와 같은 범죄 행위를 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난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또한 그 시작은 SNS를 통한 온라인 그루밍이었다. 범죄자들은 채팅앱 등으로 청소년에게 접근해 가벼운 대화나 호감 표시로 친밀감을 쌓은 뒤 성착취, 성매매 등을 위해 청소년을 통제하고 조종했으며, 그 결과 온 국민을 공분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이어지는 예비 단계인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하는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제 각종 SNS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성적 대화를 하거나 성적 행위를 유인하는 성인들에게 3년 이하 징역이라는 벌을 가함으로써 그루밍이 더 심각한 성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온라인 그루밍과 성착취 단속을 위해 경찰에게 위장 수사를 허용하는 특례 규정 또한 입법됐다. 온라인 그루밍은 그 특성상 범행이 내밀해 피해자의 신고가 없으면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루밍 피해 청소년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도 있다고 자책해 신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때 미성년자로 신분을 위장한 경찰이 채팅하며 증거를 수집하고 수사를 하면, 음지에 숨어 있는 범죄자를 능동적으로 검거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이버 순찰 활동’이 알려지면 관련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6일은 n번방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박사’ 조주빈이 검거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사건의 주모자들은 잡혔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의 박사, 갓갓이 또 다른 성범죄를 계획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번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으로 성착취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됐다. 하지만 아직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은 오프라인 그루밍, 성인 대상 성착취 및 몸캠피싱 등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한 성범죄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교묘하고 은밀하게 뻗어오는 범죄자들의 마수를 차단하기 위해 국민 여러분과 관계 부처의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조주은 경찰청 여성청소년안전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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