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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도로 위 무법자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안전 운전 꿀팁’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설마 저 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겠어?”(바꾼다), “설마 저기서 끼어들겠어?”(끼어든다), “저 사이로는 못 지나갈 것 같은데?”(일단 들이민다), “순서상 내가 가는 게 맞지?”(맞지만 쟤 생각은 다르다). 결론. 지금까지 이 같은 일을 수없이 겪어본 바, 안전 운전을 하려면 “도로 위에서는 나 빼고 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PD’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이가 쓴 트윗인데 격하게 공감하며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 ‘내 앞으로 절대, 단 한 대도 끼워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운전하는 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뿐이랴. 신호 대기를 하다가 잠시만 머뭇거려도 잡아먹을 듯이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 역시 갈수록 눈에 띈다. 차선을 바꾸며 깜빡이를 켜지 않는 경우는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예전에는 이게 문화 의식이나 국민성 같은 게 아닐까 막연히 짐작했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대부분이 번아웃 상태, 즉 양보나 관용 따위를 보여줄 여력이 없을 만큼 예민해져 그 기분이 자연스레 운전 태도가 됐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한번은 이런 일을 겪기도 했다. 서울 한남역 부근에서 강변북로 쪽으로 진입하려는데 도로 정비를 하는지 기계차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한쪽 차로를 막고 있었다. 두 차선이 한 차선으로 줄어들어 병목 구간이 생긴 거다. 운전 연수를 하거나 초보 운전자 시절에 다들 배우지 않나. 병목 구간에서는 서로서로 양보해 오른쪽 차와 왼쪽 차가 교차 진입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한데 정차해 있던 내가 한 번 기다렸다가 진입하려는 순간, 옆 차선에 있던 뒤차가 앞차의 꼬리를 물고 능청스럽게 스윽 차머리를 들이밀려 했다. 나는 클랙슨을 울리며 내 차례임을 알리고 먼저 차로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문제의 차량이 내 뒤에 붙어 쫓아오기 시작했다. 색깔도 눈에 잘 띄는 노란색이어서 착각했을 리가 없다. 독일인가 어디에서 만든다는 스포츠카였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천천히 차선을 바꿔봤다. 노란색 스포츠카는 여봐라는 듯 따라서 바꾸더니 내 차 뒤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잘못은 내가 했지만 네가 클랙슨을 누르는 바람에 내 기분이 상했으니 너를 겁주겠다’는 심보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무리하게 끼어든 차를 향해 하이빔을 켰다는 이유로 보복 운전을 하고 야구방망이로 운전자를 내리쳐 심한 부상을 입혔다는 뉴스가 문득 떠올랐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다행히 나에게 그런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자동차전용도로를 빠져나오면서 추격은 끝이 났다.

그로부터 며칠 후. 공교롭게도 같은 길을 또다시 지나게 됐다. 몸이 아픈 엄마와 함께 한양대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한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엄마가 불안한 눈빛으로 “급하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서둘러” “신호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출발하면 어떡해” “끼어들기 전에 깜빡이를 켜야지 끼어들면서 켜다니”라는 식으로 시종일관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깜빡이를 켜면 그전까지는 천천히 진행하던 차들도 마치 수리부엉이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혹은 전경 버스가 차벽을 만들듯 앞차에 바싹 붙으며 안 끼워준단 말이야, 하고 변명을 하려다 퍼뜩 깨달았다. 나 역시 도로 위의 미친놈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을.

며칠 전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다가 그동안 내 몸속에 배어 있던 운전 습관을 되돌아보게 된 문장을 마주하고 기억해 두기로 했다. “아침에 우연히 기분 나쁜 운전자와 마주쳤다면 그 사람이 나쁜 놈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기분 나쁜 운전자와 마주쳤다면 당신이 나쁜 거다.” 대관절 왜 도로 위에는 이렇게 미친놈이 많은가,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올린다면 안전 운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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