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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멋진 부자 되기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내가 번 돈은 몽땅 좋은 일에 다 쓰고 갈 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갓뚜기’로 부르는 오뚜기의 설립자 함태호 명예회장이 생전에 했던 말이다. 그는 4500여명의 어린이들이 심장 수술을 받도록 해주고 687명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시가 933억원 상당의 개인 주식 13만5000주를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마라”는 그의 지시에 따라 오뚜기는 99%의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나머지 1%는 스스로 시간제를 원하는 직원들이다.

이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리디아알앤씨의 임미숙 대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 청년과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면서도 기독교 냄새 안 나는 기독교 기업을 세우고자 했다. 임 대표는 성경에 나온 가치대로 회사를 운영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믿었기에 잘못된 업계 관행을 따르지 않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회사를 경영했다. 신입 사원을 뽑을 때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전 직원이 투표로 채용을 결정하며, 막대한 자금을 들여 직원 교육을 지원할 뿐 아니라 자녀를 둔 직원은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도록 했다. 직원들은 하루 7시간30분만 근무하면 된다. 임 대표는 이런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의를 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소위 어른이 없는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르신으로 불린다. 그는 과거 흥국기업 총수로서 흥국탄광을 발판으로 흥국조선, 흥국흥산, 흥국해운, 흥국화학 등의 분야를 확장해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수많은 민주 인사를 직간접적으로 도왔고, 수십 채 이상의 집을 후원했으며, 은신처와 활동 자금을 지원했다. 1960년대 당시 전국 소득세 10위권 내의 거부가 됐지만 1973년 재산을 모두 직원들에게 분배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그는 원래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준 것뿐이라고 말한다.

3·1운동의 핵심으로서 오산학교 설립자로 알려진 이승훈 선생은 사실 성공한 기업가였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16세에 유기상 곧 놋그릇 가게의 노동자가 됐으며, 10여년 동안 놋그릇 행상과 공장 경영 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국내 굴지의 실업가로 성장했다. 그는 비록 러일전쟁으로 인해 기업을 잃었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나서 나머지 재산을 털어 오산학교를 세운 뒤 기독정신이 담긴 사학으로 성장시켜 대한독립과 민주화 과정에 큰 공헌을 했다.

유한양행 유일한 사장은 1926년 미국에서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우리 민족의 건강을 위한 약품들을 개발해 판매했다. 그는 유한양행을 경영할 때 항상 윤리경영을 실천했고 절대로 탈세하지 않았으며, 1936년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 즉 주주자본주의를 실시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는 자신의 재산에 대해 ‘예수님이 맡기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1970년 유한재단을 설립해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공업전문대학을 운영하고 1971년 별세하기 전 손녀의 학자금으로 쓰일 1만 달러를 제외한 전 재산을 교육 사업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 선거와 맞물려 광풍으로 휘몰아치고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 그들의 불로소득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앞의 좋은 부자들을 주목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부자들, 욥을 비롯해 보아스, 아리마대의 요셉, 루디아, 브리스길라, 다비다, 고넬료 등과 같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돈을 위해 살지 않고 선행과 구제를 위해 번 돈을 사용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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