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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2년 전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조국 사태’를 규탄할 때였다. 그 와중에 일부 젊은이는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때 점잖게 생긴 어떤 노인이 한 젊은이의 손을 잡고 간곡하게 타이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하소연’이 통했을까. 아니 말이 통했을까. 듣는 둥 마는 둥 시선 줄 데 몰라 하던 그 청년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16세기 중반 조선은 갖가지 국가 현안에 골머리를 앓았다. 한쪽 국경에서 오랑캐들이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기근을 견디다 못한 중국 사람들이 자꾸 우리 땅으로 몰려왔다. 명종은 이런저런 ‘7가지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신하들에게 대책을 물었는데, 오히려 근심이 더 깊어졌다. 신하들의 의견이 사사건건 충돌했기 때문이다. 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임금은 ‘왜 이리 서로 의견이 다른가’라며 한탄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 모양이다. 우리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왜 이리 서로 다른지 한탄할 일의 연속이다. 지역과 계급의 대립은 기본이다. 이제 세대와 성별의 차이 때문에 사회가 더욱 분열되고 있다. 동일한 사실을 다르게 보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정신적 내전 상태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꼭 그렇게 비관할 것만은 아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 사이의 다름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는 한계조건이 그렇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 굳이 유물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당파적 ‘계급이익’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얼마나 될까.

오늘날 확증편향을 탓하는 것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편향적 사고방식이 인간 진화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높은 곳을 올려다볼 때보다 아래로 내려다볼 때 거리를 과대평가하는 편향을 보인다. 이것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적응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고 함부로 비판할 일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그런 오류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것은 민주사회 시민의 필수적 덕목이기도 하다. 과거 같으면 권력으로 이단자나 소수파를 손쉽게 찍어누를 수 있었다. 민주국가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사는 유대인과 무슬림을 생각해보라. 이 두 부류는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으로 결코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상호 평등한 시민들이다. 평화적으로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친북좌파’든 ‘태극기 부대’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법을 지키는 한 자신의 주장을 펼 권리가 있다.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명종이 한탄하던 바로 그 무렵, ‘수상록’으로 유명한 몽테뉴는 브라질 원주민 세 사람을 만났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물이 ‘백 개의 팔다리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서로 다른 수많은 삶의 방식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사람이 자신의 경향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자신의 노예가 될 뿐이라고 경고했다. 460년 전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라틴어에 ‘그것은 우리의 문제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에 불만이 많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버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 이상은 높고 우리 몸은 못 따라가니 민주주의가 불만스러운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어려운 것이다. 오죽하면 루소가 신의 나라에서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했을까. 이상을 끄집어 내릴까, 아니면 우리가 올라가야 할까.

몽테뉴는 반대되는 의견들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볼 것을 권면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도처에 민주주의는 있는데 막상 민주주의자는 없다. 그런 민주주의가 잘 될 수 없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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