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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행정기본법 제정, ‘K-Law’의 시작

이강섭 법제처장


플랫폼이 대세다. 본래 플랫폼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을 뜻하는데, 요즘은 애플리케이션이나 컴퓨터 운영체제처럼 시스템의 ‘골격’,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의 ‘연결고리’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이제 우리는 식당에 전화해 치킨을 직접 주문하는 일도 드물고, 영화를 컴퓨터에 따로 저장하지도 않는다. 플랫폼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에도 민법, 형법처럼 뼈대 기능을 하는 것들이 있다. 행정법 분야에서는 오늘 공포된 행정기본법이 앞으로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5000개가 넘는 국가 법령 중에 행정법령이 4600여개가 되는데도, 그간 행정 분야의 법 집행 원칙과 기준이 되는 기본법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국민이 겪는 불편이 작지 않았다. 같은 신고인데도 어느 경우에는 신고서를 내기만 하면 그냥 수리되는 반면 어느 경우엔 공무원이 심사해 반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통일된 기준 없이 제각각 운영되고 있었다. 또 신뢰 보호 등은 판례와 이론을 통해 이미 확립된 원칙인데도 명문화돼 있지 않다 보니 공무원들이 실무에 적용하지 않아 소극 행정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시작한 행정기본법 제정 작업이 오랜 연구와 입법 노력 끝에 이번에 결실을 봤다. 법이 시행되면 일관된 집행 기준에 따른 행정이 가능해지고 법도 한결 쉬워진다. 특히 과징금이나 이행강제금처럼 여러 법에 흩어져 있던 제도들의 통일적 기준이 생겨 앞으로는 개별법을 일일이 고치지 않고도 행정기본법 개정만으로 제도 개선이 가능해진다.

국민 권익도 한층 두텁게 보호된다. 잘못된 처분이라고 생각되면 소송과 별개로 이의신청 절차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인허가 취소 같은 제재 처분을 할 수 있는 기간도 5년으로 제한했다. 모르는 사이에 법을 위반한 후 십수년이 지났는데, 갑작스러운 영업장 폐쇄 처분이 나와 사업자를 당황하게 했던 관행을 바로잡고 행정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요즘 자율주행차, 키오스크 편의점 등 무인화가 활발하다. 행정기본법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부응해 처분을 완전히 자동화할 수 있는 근거도 담았다. 앞으로는 행정 분야도 법률에 근거가 있다면 사람의 개입 없이 과속 촬영부터 오류 판독, 과태료 부과까지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처리할 수 있게 된다.

K방역의 우수한 성과와 ‘기생충’ ‘미나리’ 등의 K콘텐츠로 대한민국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다른 나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와 콘텐츠로 세계를 선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행했던 식민 시대를 경험한 우리나라는 법제에서도 일본법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 그러나 이번 행정기본법 제정으로 아직 행정실체법이 없는 일본을 앞서게 됐다. 앞으로 행정기본법이 우리 일상에 안착하고, 이를 발판 삼아 ‘K로(Law)’가 세계 표준으로 자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강섭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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