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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LH 사태 이후가 더 걱정이다

고세욱 경제부장


“다른 건 몰라도 실명으로 투기한 것 자체가 제일 놀랍더라.” 며칠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대해 한 말이다. 자기 명의 등으로 버젓이 3기 신도시 부지에 100억원대의 땅투기를 한 일부 직원들의 행위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런 뻔뻔함과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두 가지 추론을 가능케 한다. ‘이전 선배들도 그렇게 했다’와 ‘주택 공급을 우리가 좌우하는데 누가 뭐라 할까’다. 과거 관행도 없지 않겠지만 시대적 자정 흐름을 고려하면 몇 년 새 부동산 정책 결정의 주류로 올라선 LH의 파워가 임직원들의 자만과 일탈을 더 부추겼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이런 점에서 공공 위주의 정책으로 LH에 힘을 실어준 현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집권 초 민간 공급은 억제하고 수요 단속에만 몰두했다. 이는 공급 부족을 초래해 집값을 급등시켰다. 부랴부랴 2018년 말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고 주택 공급 대책의 주도권을 LH에 쥐어줬다. 올 2·4 공공 공급 대책을 세우면서는 택지 개발과 임대주택 건설이 주 업무인 LH에 민간 영역이던 재건축·재개발 시장 업무까지 넘겼다. 역대급 권한이 주어졌다.

민간이 시장을 이끌고 사각지대를 공기업에 맡기는 게 자본주의 경제의 상식인데 이를 뒤바꾼 것이다. 탈이 안 날 수 없는 정책 착오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기조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LH 문제가 터진 뒤에도 “2·4 대책은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공 정책 주도 기관의 신뢰가 추락해 대수술이 불가피한데 그 기관이 하던 일은 지속하겠다는 얘기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받은 정책들이 LH 사태 후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2일 ‘1가구 1주택 원칙’을 명시한 주거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 법안소위에 상정됐다. 지난해 12월 발의 당시 ‘사유재산’ 및 ‘주거 이전 자유’ 침해 논란을 일으켜 사장되다시피 한 법안이 뜬금없이 살아난 것이다.

여당은 “LH 사태와 관련해 토지와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차원에서 (이 법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공직자가 미공개 정보를 사적 투기에 활용한 사안의 해결책이 어떻게 반시장적인 ‘1가구 1주택 강제화’가 될 수 있나.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언급한 날 이 법안이 상정됐다. 현 정권 특유의 남 탓 하기와 물타기 신공으로밖에 볼 수 없다.

‘빅브러더’로 지적받은 뒤 한때 잠잠해진 부동산 감독기구 ‘부동산거래분석원’의 출현도 속도를 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LH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부동산분석원을 빨리 설치해야 한다고 하는데 설치 법안에 가득한 독소 조항은 외면하고 있다. 법안은 ‘자신의 부동산을 거래 의사 없이, 체결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를 등재하거나’ ‘시세보다 현저하게 높은 가격으로 등재하는 경우’ 징역 및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국회 검토보고서조차 “개념이 모호해 국민 기본권을 과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하던 내용들이다.

자신들이 자초한 잘못을 고치지 않고 ‘우리식’ 해법만 고집하는 것은 무능을 자인하는 격이다. 2016년 출간된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에서 저자 장신기는 고매한 이상을 추구하는 진보가 실물경제 해결 능력은 약하다는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고 했다. 책에서 한 시민은 “민주 투사들은 권력을 만들고 쟁취하는 것에는 상당한 기술과 능력이 있지만 경제에는 감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5년이 지난 지금 LH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행태는 이 같은 속설을 더욱 확고하게 하고 있다. 진보 진영 전체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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