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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맹인을 고치신 기적 (2)

요한복음 9장 1~7절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만 해도 한센병, 척추장애 혹은 시각장애 같은 큰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죄에서 찾았다. 분명 무슨 큰 죄가 있기에 이런 화를 받았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로 병자들의 고통은 깊었다. 왜냐하면 아픈 것도 서러운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죄인 취급을 했고, 저주받은 인간이라는 시선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면 그의 부모나 조상의 죄가 있기에 그 저주가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맹인을 만났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이 맹인은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냐고 물었다. 자기 자신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인가를 물었다. 선택도 없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절)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랬다. 이 맹인이 아픈 것은 그가 지은 과거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고통과 고난이 아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것은 없다. 오히려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과 고난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하셨다.(3절) 이렇게 선언하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우리는 무슨 어려움이 생기면 많은 경우에 내가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를 생각한다. 죄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또 그렇게 해서 찾아야 안심을 한다. 왜냐하면 원인을 알게 되면 이 죄에 대해 회개할 수 있고, 회개를 통해 고통에서 회복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은 내가 지은 죄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욥과 나사로이다. 이들에게 일어난 고통과 죽음은 죄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생각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고통은 무조건 죄로 인한 결과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고통의 목적은 이를 통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알리시는 것이다.

물론 죄 없는 사람은 없다.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죄지은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로 고민하고 깨끗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죄에 민감한 사람은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머리로만 알고 믿지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과거의 죄뿐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기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받는 가장 큰 축복은 모든 얽매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제는 과거 나의 실수와 어두움이 나를 묶지 못한다. 이제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했기 때문이다.(롬 8:1~2)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이시다. 하지만 강한 죄책감으로 눌려 있는 마음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다. 이것을 구분해야 한다. 죄에 대해 눌려 있는 모습에서 해방될 때만이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싶다’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우리가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그가 받은 고난을 나도 함께 짊어진다는 생각은 십자가를 무력화시키는 말이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어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십자가를 묵상하자. 그것이 우리가 살길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방법이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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