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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역주행 운전자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고속도로를 역주행으로 운전한 사람 이야기가 몇 달 전 뉴스에 나왔다. 반대 방향으로 무려 13㎞나 달린 끝에 붙잡힌 운전자는 만취 상태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정지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남자가 했다는 말이 한동안 화제가 됐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거꾸로 가고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자기가 똑바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제지를 당하면서도 아마 자기 차를 왜 세우는지 의아해 했을 것이다. 자기가 바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반성하지 않는다. 잘못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 혹은 자기가 잘못 가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는 사람이 반성한다. 투철한 확신의 소유자들은 반성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 자기와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바로 가는 많은 사람을 비난한다. 바로 가는 많은 사람을 잘못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투철할수록 더 심하게 비난한다.

길을 잘못 들어갈 수 있다. 오래전에 나는 우리나라와 운전석과 주행 방향이 다른 영국에서 길을 잘못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 후진해서 나온 적이 있다.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났던 기억이 난다. 역주행은 위험하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것은 역주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거꾸로 가면서 바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깜짝 놀라 후진해서 돌아 나오지 않는다. 도리어 자기가 옳다는 확신에 차서 바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이 운전자의 그처럼 투철한 확신이 만취에서 비롯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술은 그의 분별력을 빼앗고, 혹시 자기가 잘못 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를 빼앗고, 맹목의 확신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을 맹렬하게 비난하기만 하는 사람은 만취한 사람과 같다.

“이념은 저항에 굴복하지 않는 광신자, 저항을 염두에 두지 않는 광신자를 필요로 한다”는 문장으로 디트리히 본회퍼는 지나친 자기 확신의 위험을 경고했다(‘나를 따르라’). 이 말은 이념이 광신이라는 종교적 열정에 의해 유지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념은 투철한 확신을 가진 광신자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광신자들에 의해 막강해진다. 만취 상태 운전자와 광신자는 의식이 편향되고 반성 기제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같다. 투철한 이념은 어떤 종교보다 더 종교적이다. 역설이지만 광신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이념이다.

본회퍼는 이 문장을 통해 제자들이 따라야 할 ‘말씀’과 ‘이념’을 대립시킨다. 이념은 강하지만 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념에는 불가능이 없지만 복음에는 불가능이 있다.” 어떤 사람은 거북할지 모르겠으나 이 문장은 제자들의 기대와 달리 현실 속에서 한없이 무능한 십자가의 길을 택한 예수의 삶과 그분의 가르침을 날카롭게 지시한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숭고한 가치나 종교적 진리도 이념을 이길 수 없는데, 그것은 이념이 어떤 종교보다 더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종교는 이념에 이용당한다. 이념이 제 일을 하기 위해 종교적 명분을 앞세우거나 종교로 위장한다.

말씀 즉 진리를 이념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 그것이 본회퍼 메시지의 핵심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상의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말씀을 강요하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이념으로 만드는 셈이 될 것이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강요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이념이 하는 일이다. 종교조차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진리는 이념이 되고 만다. 자기가 바르게 가는지 반성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비난하는 데만 열정을 쏟게 된다. 술 취한 사람과 다름없게 된다. 종교가 그럴진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사람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만취한 자들, 광신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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