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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작가들의 출판 창업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소설가 이인화는 올 2월 초 1인 출판사 스토리프렌즈를 설립한 후 자신의 소설 ‘2061년’을 펴냈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월 3일에 처음 출간 소식을 알린 후 중쇄 발행을 중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4쇄 1만부를 발행했다. 초판 3000부도 팔기 어려운 시대에 한 달이 되지 않은 성적으로는 나쁜 것이 아니다. 기존 출판사들은 그의 최근 이력 때문에 작품 출간을 주저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작가라는 문화적 DNA를 가진 그가 생존을 계속해 가려면 창업밖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디지털 세계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책도 준비하고 있다.

그와는 다른 이유겠지만 팬덤을 가진 작가들의 출판 창업이 줄을 잇고 있다. 막 봇물이 터진 것 같다. 유튜브는 1인 방송이다. 적어도 유튜브를 가진 사람들은 1인 출판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판매인데 판매는 팬덤의 규모가 좌지우지한다. 과거에 책은 홀로 독야청청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팬덤을 늘리기 위해 책도 새로운 얼굴의 저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되도록 많은 스마트폰의 선택을 받아내야만 한다.

과거에 출판사를 운영하려면 기본 인력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업무를 아웃소싱으로 처리할 수 있다. 판매만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기획 입안, 원고 발주, 진행 관리, 제작 같은 모든 편집 실무를 편집 프로덕션에 맡길 수 있었다. 하늘 아래 외주로 처리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 빠르게 원고를 만들 수 있다. 인적 네트워크가 확실한 사람들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비대면으로 화상 통화를 하거나 회의를 하면 곧바로 텍스트가 만들어진다. 노트북을 앞에 놓고 대담을 나눠도 텍스트화가 가능하다. 클라우드에 접속해 집단지성으로 빠르게 텍스트를 생산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그야말로 우리는 유비쿼터스 세상에 살고 있다.

한 신생 출판사는 우리가 비대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각인하는 책을 첫 책으로 펴냈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책이었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변하자 시대 분위기에 맞게 포장만 살짝 바꿨다. 그리고 책 시장에 영향력이 가장 큰 유튜버에게 출간 사실을 미리 알리고 출간 일자를 확정했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상품기획자(MD)들을 만나 출간 사실을 알리자 MD들의 눈동자가 빛나는 모습이 즉각 확인됐다. 그들은 이 책의 판매 부수를 늘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경쟁적으로 책을 소개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즉각 독후감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출판사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책은 순풍에 돛단 것처럼 팔려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10만부를 훌쩍 넘겨버렸다. 외국의 한 출판사는 바로 판권을 사 갔다. 이 신생 출판사의 대표는 경력이 많은 이였지만 출판사를 처음 차리고 첫 책으로 대박을 내고서야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절감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난감한 것은 기존 출판사다. 팬덤을 확보한 작가를 찾아다녔지만 그런 작가들이 출판 창업을 해버리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방송국의 처지 또한 비슷하다. 인기 절정을 달리던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떨어진 한 어린 가수는 유튜브에서 ‘국민 스타’로 칭송받고 있다. 그를 떨어뜨린 방송사와 전문심사단은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은 모든 영역에서 1인 크리에이터가 각광 받는 시대다. 바야흐로 우리 출판도 그런 급류 속으로 빠르게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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