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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선지자 소명인가, 제사장 역할인가

맹경환 종교부 선임기자


대학 1학년 때였다. 미학과 김문환 교수의 첫 리포트 주제는 ‘예술과 정치’였다. 어쭙잖게 죄르지 루카치의 이론과 막심 고리키의 소설을 들먹여 가며 예술은 현실을 반영해야 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같다.

1980년대 끄트머리 독재 정권의 서슬이 여전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당연히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변했지만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언제나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도 오래된 숙제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정교 분리라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순응 쪽에 가까웠다. 일제 강점기 많은 교회들은 생존을 위해 신사참배를 받아들였고,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독재자를 축복했다.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하신 말씀은 정부에 대한 순응의 뜻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존 레테콥이 ‘기독교 정치학’에서 “기독 시민은 정부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거부하지 않고, 국가와 정부의 합법성을 긍정하고 이에 순응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민주화 열망이 들끓던 때에도 한국교회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기독교 진보 진영에서 민주화 인권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지만 대부분은 귀를 닫았다. 하지만 87년 4월 전두환정부가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많은 기독교인들도 단식과 기도회 등을 통해 본격적인 저항에 나섰다. 국민과 더불어 순종이 아니라 저항과 비판이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어 한국교회는 다시 순응을 택했던 것 같다. 나아가 교계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 이명박정부 탄생에 앞장서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정권 10년이 끝나고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 ‘선지자’ 전광훈 목사로 대표되는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은 정권 타도를 외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간첩” “북한에 대한민국을 갖다 바치려 한다”는 주장도 서슴없다. 전광훈 진영이 기독교 내에서 소수인 것은 다행이지만 그가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준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신학자이자 영국 캔터베리대성당 대주교를 지낸 로완 윌리엄스는 세례받은 사람, 즉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삶으로 설명한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면모를 본받아 비판적이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기독교인에게는 무너져 버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다리를 놓는 제사장처럼 세상의 화해를 이루고 깨진 관계를 치유하는 소명이 주어진다. 그리고 사회의 법과 정의를 세우는 자유를 가진 왕처럼 정의와 자유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각각이 결코 분리된 소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사장적 삶만 좇는다면 선지자적 비판 기능을 잃게 된다. 과거 독재 정권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던 한국교회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선지자의 임무를 전부라고 생각하면 논리와 근거도 없이 세상을 무조건 비판만 하는 집단으로 전락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정의와 자유의 추구는 언제나 시대를 관통하는 기독교인의 소명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무엇보다 소명 간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세상이 선지자를 원할 때면 과감하게 선지자가 돼야 하지만 제사장의 역할이 중요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를 버려서는 안 된다. 진영논리로 갈라진 지금, 대한민국에 기독교인의 어떤 소명이 더 필요할까. 선지자일까, 제사장일까. 굳이 선택하라면 말이다.

맹경환 종교부 선임기자 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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