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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엘시티 조형물 논란… 문체부에 원죄 물어야


서울에 사는 내가 4월 보궐선거의 부산시장 선거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 조형물 때문이다. 국내 두 번째 높이의 초고층 복합단지인 해운대 엘시티 앞에 설치된 공공미술 ‘부산 무한의 선(線)’말이다. 18억원짜리 이 조형물의 납품에 야당인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부인의 아들이 운영하는 J사가 관여됐고, 그 과정에서 박 후보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욱이 박 후보 가족이 엘시티 아파트를 두 채나 갖고 있고, 그중 한 채는 가족끼리 매매한 사실이 드러난 뒤라 엘시티는 부산 선거판 핫이슈가 됐다.

선거판 이전투구에 대해 쓰려는 건 아니다. 내 관심사는 조형물 가격과 제도 문제다. 미술 작품 가격은 부동산 시세처럼 공표되는 게 아니어서 대부분 잘 모른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여당 대권 후보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과거 국무총리에 내정되면서 화가인 부인의 그림값 논란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그가 전남지역 국회의원이던 시절, 전남개발공사는 부인의 그림 2점을 900만원에 구입했는데 그게 고가 논란에 휩싸였다. 미술시장에서 대학원 갓 졸업한 신진 작가의 100호 크기 유화 한 점도 400만∼500만원 한다. 그림값에 대한 무지가 그런 논란을 불렀다.

엘시티 조형물 가격은 어떤가. 작가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파블로 레이노소다. 구글을 검색해보니 돌, 철, 나무 등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베니스비엔날레, 아트 바젤 등 국제적 미술 행사에 이름을 드러냈다. 작품이 프랑스 엘리제궁에도 소장돼 있다. 나무 벤치의 끝이 국수 다발처럼 뻗어나가는 일명 ‘스파게티 벤치’는 시그니처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 보이는 위트가 엘시티 조형물에서는 덜 보인다는 건 아쉽다. 페이스북 등엔 이 작품을 두고 “고철” “쓰레기” “고물상이 치울 것”이라는 험한 댓글이 달렸다. “저런 건 나라면 150만원에도 하겠다”라고 쓴 이도 있다.

그 가격은 적정할까. 공공미술 기획사를 운영하는 모씨는 국제적 인지도 등을 따져봤을 때 약간 비싼 감은 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제시한 가격은 15억원 선. 하지만 그보다 국제적 인지도는 훨씬 낮은 국내 작가 김모씨가 제작한 인천국제공항 상징 조형물 ‘미래로 비상’이 24억원인 걸 감안하면 엘시티 조형물 18억원을 비싸다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표준화되지 못한 공공미술 작품 가격, 심의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 부족이 이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원죄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엘시티 조형물은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에 따라 설치됐다. 정부는 1만㎡ 이상 신·증축 건물에 대해 건축 비용의 0.7%를 미술품 설치에 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19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한다. 법이 제정된 지 반세기가 되지만 조형물의 설치만 이야기할 뿐 철거에 대한 규정은 없다. 건물이 부서질 때까지 그 자리에 둬야 한다. 그러다보니 건축주들이 좋은 작품을 고르려는 의지도 없다. 그 틈을 비집고 로비와 부정부패가 생겨난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심사 과정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보다 확실한 대책은 작품 철거와 재판매 기회 부여다. 상업적 동기를 부여하는 거다. 재판매가 허용되면 건축주들이 10년 뒤에 되팔아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선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애 주기(일정 기간 후 철거를 허용하는 것)’ 도입이 필요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생애 주기를 시행하고 싶지만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가 없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법을 관장하는 문체부가 책임 방기를 했다는 얘기다. 부산 선거판에 황희 문체부 장관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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