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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절대 반지가 파괴된 후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올해는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된 지 20년이 되는 해여서 전 세계적으로 이 영화와 원작자 존 로널드 R 톨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영화가 리마스터링돼 최근 극장에서 재개봉됐고, DVD나 책이 다양한 형태로 재출간됐다. 톨킨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반지의 제왕’은 전 세계적으로 1억부가 팔렸다고 한다. 톨킨 독자들의 기대와 우려 속에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자 톨킨에 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영화 개봉 이후에 이 책이 5000만부 더 판매됐다고 한다. 이러니 원작 소설과 영화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그렇지만 영화가 큰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일차적 이유는 톨킨의 책 자체가 가진 매력 때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은 꼭 책도 읽어야 한다.

톨킨의 책을 읽다 보면 영화와 책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진다. 책과 영화 사이에 수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를 하나 고르라면 ‘샤이어 소탕 작전’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장의 내용이 영화에서는 생략됐다는 점이다. 이 장은 3권 맨 끝에서 두 번째 장인데, 호빗족 프로도 일행이 절대 반지를 파괴하고 고향인 샤이어로 돌아와서 생기는 일을 그리고 있다.

프로도 일행이 샤이어로 돌아와 보니 마을 주민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헐벗은 삶을 살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장이라는 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와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을 돕는 척하더니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 마을을 장악하고 있었다. 저항하던 호빗들은 죽거나 감옥에 갇히고, 어떤 호빗들은 악당의 끄나풀 노릇을 하며 동족을 괴롭혔고, 곳곳에 규칙서라는 벽보가 붙어 있어 주민들의 삶을 통제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긴 프로도 일행은 샤이어를 장악한 악당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마을 주민을 설득해 힘을 합해 악당들을 쉽게 물리쳤다. 마지막 대결에서 대장이라는 자와 마주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앞선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악한 마법사 사루만이었다. 샤이어 밖의 큰 세상에서는 선악의 대결에서 악이 패했음에도, 샤이어 주민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무력한 사루만이나 악당들을 아직도 두려워하며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결국 사루만은 부하의 칼에 찔려 죽고 샤이어는 다시 평화를 찾게 된다.

감독은 왜 위 장면을 영화에서 생략했을까. 이 이야기가 그 자체로 매우 비중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영화가 마무리돼가는 시점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일부 비평가는 영화에서 생략된 이 장이 톨킨의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는 쉬운 방법은 영화를 보았더라도 ‘샤이어 소탕 작전’은 꼭 책을 찾아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톨킨 작품의 위대함을 더욱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지의 제왕’ 세 권 전체의 50분의 1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일까? 선과 악의 우주적 대결에서 이미 선이 승리했지만, 그 승리의 소식이 삶의 구석구석에까지 파급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샤이어 마을의 상황은 일왕이 항복을 선언했는데도 그 소식을 듣지 못해 일본 순사를 여전히 두려워하는 외딴 마을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은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죽음과 악의 세력이 정복됐음에도,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은가. 사순절이 깊어지는 때 ‘반지의 제왕’을 통해 믿음과 선교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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