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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미국, 모범으로 존경받아야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989년 파리에서 국제 평화의 열쇠를 찾기 위해 미·소 관계를 연구하다 충격을 받았다. 국제 평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했던 미국보다 로널드 레이건이 ‘악의 제국’으로 지칭했던 소련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치하에서 평화를 더 중시하는 외교를 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련은 미국과 달리 핵 실험을 계속 유예했고 주저하는 미국을 설득해 몇 배 더 많이 갖고 있던 중거리핵미사일(INF) 전폐조약을 체결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9년 이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앞서 소련이 전술핵 전폐도 제안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2002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안내자는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해와 반테러전쟁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중동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목숨을 버리면서 공격을 감행한 것은 미국이 그들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인식했을 수도 있으므로 동시에 이런 근원도 시정하면 더 지혜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샌안토니오와 샌프란시스코의 국경경비대장은 멕시코와 태평양 지역으로부터의 마약 유입을 막는 게 소명이라고 말했다. 부귀 번영을 누리는 미국으로 마약이 쇄도하는 것은 수요자가 많기 때문이니 수요를 줄이는 근원 처방도 필요해 보였다. 미국이 세계 평화와 경제 안정을 위해 기여하고 있지만 ‘불량국가’들을 바른길로 인도할 때 모범을 보이면서 한다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악과 책임은 미국 밖에 있다면서 모범은 보이지 않고 남을 주로 탓하는 대외 정책을 펼쳐온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핵 비확산 문제를 보면 북한에 최대한의 제재를 동원해 압박해왔는데,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도 하지 않고 핵무기 수백개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은 특별한 관계라고 비난조차 하지 않았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마찬가지인데 오히려 협력하고 있다.

더구나 초강대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의 동맹국인 북한에 체제보장도 해주지 않고 압박만 가한다면, 북한이 핵을 내려놓을 리 없다. 2000년대 초 북한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의회 비준만 받아주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무시한 것도 아쉽다. 트럼프가 싱가포르 합의는 이행할 생각도 않으면서 북한의 비핵화만 압박한 것도 안타깝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라도 북한이 안심하고 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미국을 신뢰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북한과 중국의 인권 문제도 미국이 모범을 보이면서 비난하면 훨씬 더 규범력이 있을 것이다. 인종차별이 구조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 통계로 확인되고 매년 총기로 8000명 이상이 살해당하며 빈부격차도 매우 심각한데 이런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미미하다. 인도의 계급제나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언론인 살해 지시는 우방이라고 묵과하면서 북한과 중국의 인권에 대해선 경제 제재까지 가하면 정당성이 떨어진다.

특히 민주 국가에 제재를 가하면 국민이 집권자를 탓하므로 효과가 있지만,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제재는 대부분의 고통이 주민에게 전가되고 집권자는 미국과 서방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보다 쉽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부작용도 낳는다. 미국이 1990년대 초 이라크에 제재를 가하자 의약품과 식료품 부족으로 5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오히려 대중적 인기를 누린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 직후 “다시 존경받는 미국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이 자국 체제의 미비점을 개선하면서 국제정치에서 모범을 보였으면 한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도발 억지와 함께 회복된 국제 신뢰를 기반으로 상호주의에 입각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집중해 국제사회에서 더 큰 존경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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