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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내부 결속력 강화 없이 도전 극복 힘들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미·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고위급 회담에서 말 폭탄을 주고받았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임기 중에 중국이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정권이 교체됐지만 미·중 관계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물론 미·중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킨들버거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개념은 찰스 킨들버거가 1930년대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헤게모니 국가가 없어서 대공황이 10여년이나 지속됐다고 주장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 문제는 제2차 대전 후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 나서면서 해결됐다. 미국은 규칙기반 질서를 만드는 데 앞장섰고, 그것은 세계화가 진행되는 바탕이 됐다. 그 후 세계 경제는 60여년간 공전(空前)의 호황을 누렸다. 그런 구도에서 처음에는 유럽과 일본이, 뒤이어 한국과 대만이, 그다음 중국이 고도성장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그런 구도에 큰 타격을 가했다. 뒤이은 대침체는 그 깊이가 대공황보다 얕아도 길이는 더 길었다. 대침체는 세계화의 부진을 동반하고 포퓰리즘의 득세를 가져와 규칙기반 질서를 위협했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겹친 것이다. 중국은 처음에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바탕 위에서 고도성장을 했지만, 덩치가 커지자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의 소련, 일본, 유럽연합 등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자 내지 잠재적 도전자보다 훨씬 강하다.

미·중 갈등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가속되고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달리 과감하게 경기를 부양하고 있어 대침체와 세계화의 부진이 조만간 끝날지도 모른다. 서방 국가와 중국의 경제적 분리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중 갈등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미·중이 모두 ‘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미국인에게 ‘USA 넘버 원’은 자신들의 생활 수준이 중국보다 더 높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해야 되는 것이다. 중국은 더하다. 지난 200여년간의 굴욕을 청산하고 세계 최고 국력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대다수 중국인의 목표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는 큰 도전이다. 한국이 외부 조건의 변동에 당면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에 미국의 일방적 개방 압력을 받기도 했고, 1990년대에는 냉전 후 세계 질서 재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지금 당면하고 있는 변화는 그런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지각 변동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세계 질서의 지각 변동에 잘 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19세기 ‘서세동점’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그 실패는 식민 지배로 이어져 지금도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것은 당시 일본은 성공하고 조선은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국가 역량이다. 근대 세계에서의 유럽 우위는 지속적 전쟁을 통해 닦아진 국가 역량이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유럽과 가까웠는데, 조선은 정반대였다. 둘째는 바깥 세계를 보는 능력이다. 일본은 바깥 세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반면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셋째는 내부 결속력이다. 일본 지배층은 서세동점 하에서 내부 분열은 안 된다는 합의를 한 반면 조선 지배층은 내부 분쟁에 외세를 끌어들였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조선은 동학농민전쟁을 스스로 진압할 자신이 없어서 청나라 병사 4000명에 의존했지만, 지금 한국은 현대화된 60만 대군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국가 역량은 세계 정상급이다. 바깥 세계를 보는 능력도 일취월장했다. 모든 국민이 관심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 그러나 내부 결속력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일각에서 여전히 국내 분쟁에 외세를 끌어들이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때와 달리 정치가 민주화돼 있다고 해서 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이 세계 질서의 지각 변동에 대응하는 데는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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