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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캔슬 컬처

천지우 논설위원


어느 유명 인사나 창작물의 문제점이 온라인상에서 폭로, 전파돼 공분을 일으키고 보이콧 움직임이 불붙는 것. 요즘 숱하게 접하는 이런 현상을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 부른다. 여기에서 캔슬은 ‘취소’보다는 지지 철회나 손절, 배척, 사회적 매장, 응징, 온라인 몰매로 해석하는 게 적절하다.

최근 27세 흑인 여기자가 미국 유명 패션지 편집장으로 깜짝 발탁됐다가 아시아인의 외모를 조롱했던 10년 전 트윗 때문에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 미국의 전형적인 캔슬 컬처 사례다.

인종이나 성차별 등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어긋난 언행을 까발려 응징하는 것이 미국식이라면, 한국식 캔슬 컬처는 양상이 좀 더 다양하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과 스포츠스타 여럿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인기 코미디언 박나래는 온라인 콘텐츠에서 인형을 갖고 성적인 묘사를 했다가 비난 세례를 받았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역사 왜곡과 중국풍 설정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 방영 2회 만에 폐지됐다. JTBC 드라마 ‘설강화’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방송 전부터 폐지 요구를 받고 있다. JTBC는 그런 내용이 결코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해외에선 캔슬 컬처의 사나운 위세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등 영미권 지식인 153명은 함께 발표한 서한에서 신속하고 강렬한 응징을 요구하는 세태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의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도 최근 BBC방송 인터뷰에서 젊은 작가들이 온라인 몰매가 두려워 자기검열을 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실관계가 틀린 공격과 선별적이고 과도한 응징, 누군가의 삶을 꼭 망치고야 말겠다는 광기 어린 분위기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개별 사안마다 타당한 사유로 모두가 공평하게 ‘캔슬’될 수 있는 문화라면 작동을 막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천지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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