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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아시아계 여자로 살기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요즘 미국에서 뜨는 아시아계 스타라면 단연 그녀, 아콰피나다. 중국계 아버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3세 노라 럼. 아콰피나(Awkwafina)는 그녀가 생수 브랜드 아쿠아피나(Aquafina)와 어색함(awkwardness)을 조합해 만든 예명이다. 고교 때 지었다는 ‘어색한’ 이름은 그녀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

대졸 뒤 출판사에서 일하던 아콰피나는 취미로 만든 랩을 상사에게 들켜 직장을 잃었다. 대체 어떤 노래길래. 들어보니 해고 사유로는 모르겠으나 보스라면 놀랄 내용이다. 남성 래퍼가 부른 ‘마이 X(남성 성기의 속어)’ 답가라는데 노래에 여성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가 40번 넘게 등장하고 “내 것이 50배쯤 훌륭해” 같은 가사가 훅처럼 반복된다.

직장에서 잘린 건 행운이 됐다. 해고된 김에 유튜브에 올린 노래는 대박이 났다. 이듬해 앨범 ‘황인종 레인저’로 정식 데뷔했고, 몇 번의 조연을 거친 끝에 지난해 중국계 가족의 귀향 소동극을 그린 첫 주연 영화 ‘페어웰’로 골든글로브 수상자가 됐다. ‘오션스8’에 함께 출연한 샌드라 블록은 통쾌한 복수까지 해줬다. 전국 방송에 나와 아콰피나를 해고한 상사를 향해 “당신이 아콰피나한테 졌어”라고 외쳐줬다. 직장인의 판타지를 실현한 명장면이다. 올해는 A급 스타만 기회를 잡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에 마블스튜디오 히어로물의 주연을 꿰찼다.

발칙함이 아콰피나가 가진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페어웰’ 속 그녀의 연기에서는 변방에 서본 사람의 포용력이 느껴진다. 마이너리티여서 구사할 수 있는 유머도 강점이다. 그녀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무대에서 “나는 트럼펫주자에서, 래퍼에서, 여배우가 된 아시안이다. 되게 전형적이지 않나”라며 “우리 아빠 영어에 악센트 있는 거 맞다. 도널드 트럼프처럼 말한다. 둘 다 뉴욕 퀸스 출신 어르신들이니까”라고 객석을 웃겼다. 아시아계 여성은 정해진 길만 가는 모범생이거나 섹스 노동자 둘 중 하나라는 편견, 동양인처럼 생기면 영어를 못할 거라는 선입견. 고정관념을 두루 역이용한 여유만만한 농담이었다.

좌충우돌 시끌벅적하고 센스 있게 웃기는 여자. 아콰피나는 자신이 아시아계 여자의 평균적 이미지 밖에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사회적 기대와 존재 사이에 충돌이 있다는 것을 진즉 간파했다. 그녀는 모순과 어긋남이 빚어낸 어색함을 부인하는 대신 이름에 새겨넣었다. 그게 어색함을 품은 아콰피나라는 이름의 진짜 뜻인 거다.

개인적으로는 아콰피나를 보며 새 세대 아시안을 발견했다는 기쁨이 컸다. 금 밖으로 걸어나왔는데 얻어맞지 않는 젊은 여성의 존재도 신기했다. 그녀의 영화 두 편이 국내에 개봉된 3월, 애틀랜타에서는 한국계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여성 6명이 백인 총격범에 살해됐다. 개인적 원한은 없었다. 범인은 아시아계 스파를 찾아갔고, 아시아계 여성을 겨냥해 살인극을 벌였다. 참사 원인을 분석한 현지 기사에는 아시아 여자, 유혹, 섹스 노동자 같은 단어가 난무했다. ‘나비부인’ ‘미스 사이공’에 매춘부 수입 역사까지 거론되는 거창한 논쟁도 벌어졌다. 복잡한 건 몰라도 암시만은 알아듣겠다. 가난한 아시아계 여성은 성산업의 상품으로 수입되기 시작했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잠재적 종사자로 간주된다. 그들이 실제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아콰피나의 총천연색 개성을 보며 소수계 젊은 여자에게 저런 색깔을 허락하는 미국은 다르구나, 잠시 부러워했다. 애틀랜타 총격이 깨우쳐줬다. 아콰피나의 싸움은, 아시아계 여성의 전쟁은 막 시작된 거였다. 결말은 모른다. 모두 살해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다음 세대는 한 발쯤 나간 곳에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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