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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남산에 갔다더라

최여정 문화평론가


지난겨울부터 열중하는 일이 생겼다. 하루 만보 걷기. 친구 초대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니 내가 하루에 걸은 걸음수는 물론 연동돼 있는 친구들의 걸음수까지 보여준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루 만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잰걸음으로 1시간30분 정도 꼬박 걸어야 만보를 채울 수 있는데, 매일 그 시간을 따로 내는 것도 어려워 건너뛰는 날도 많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는 것이었다. 운전하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점심 식사 후 산책을 나서고, 계단 오르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신기한 것이, 혼자라면 지겨워 빼먹기 일쑤였을 만보 걷기가 친구들과 함께하니 재밌어지더라는 것이다. 은근한 경쟁심이 게으른 몸을 일으켜 세워 걷게 한다. 최근에는 친구들과 함께 주말 새벽에 시간을 맞춰 ‘서울 동네 걷기’도 시작했다. 주말 아침 7시, 우리는 남산을 걸었다.

‘남산에 갔다더라’가 제일 무서운 말인 시절이 있었다. 중앙정보부 기세가 서슬 퍼렇던 그 시절, 중정의 주요 기관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남산의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남산은, 내가 지극히 사랑했던 극장인 남산예술센터가 있던 곳이다. 아쉽게도 작년 12월 극장은 문을 닫았다. 2011년 가을부터 2013년 여름까지 그곳에서 일을 했으니, 세 해에 걸쳐 남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출퇴근길을 오가며 한국 현대 연극사의 뿌리인 극장의 희로애락을 함께 지켜봤다.

서울 중구 소파로 138, 남산 초입에 위치한 이 작은 극장은 1962년 드라마센터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후 현재까지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연극 전용극장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극장의 원형무대와 우리나라 전통놀이 야외무대 형식이 공존하는 건축 양식은 이 극장만의 독특한 멋이다. 무엇보다 극장에 들어가 앉아 깊은 우물처럼 고여 있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천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연극의 시간들과 아우라가 함께 넘실대는 것을 체험한다. 이것이 남산예술센터 공간의 유일무이함이었다.

남산예술센터가 사라졌다. 서울문화재단은 극장 소유주인 서울예술대학교와의 계약을 통해 2009년부터 공공극장으로 위탁 운영해 오고 있었지만 2018년 1월 서울예대가 서울시에 임대계약 종료를 통보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내가 근무했을 때도 서울시와 서울예대 간 계약 문제는 해묵은 갈등이었다. 호흡기에 의존해 가느다란 숨을 쉬고 있는 시한부 환자를 바라보는 듯 늘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우리 연극사의 상징적 공간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란 희망이란 게 있었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죽었다. 연극의 신이 떠난 자리는 K팝 스타들이 대신한다고 한다.

남산 걷기는 주말 이른 아침, 침묵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남산예술센터까지 발길을 이끌었다. 지난 연말 한강 작가 원작의 ‘소년이 온다’를 각색한 ‘휴먼 푸가’를 마지막으로 극장에 온 이후 어느새 몇 달이 지났다. 남산예술센터는 2009년 개관작 ‘오늘, 손님 오신다’부터 폐관작 ‘휴먼 푸가’까지 12년간 215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남산예술센터가 문을 닫은 날 극장은 죽었고 한국 현대 연극사의 중요한 장이 결말을 고했지만, 남산예술센터 디지털 아카이브가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12년간 극장이 남긴 자취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으로 고스란히 옮겨져 숨을 쉬게 됐다.

언제 이곳에서 연극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극장을 뒤로한 채 충무로 파출소 골목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정 경호원들의 숙소였던 산림문학관을 지나 극장 후문 골목에 자리 잡은 그 기막힌 칼국숫집이며,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청국장집, 돼지불백이 푸짐하던 백반집, 노부부가 반기던 오래된 슈퍼마켓도 그대로다. 극장은 사라졌지만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 언젠가 극장만 다시 돌아오면 되겠지. 그런 날이 오겠지.

최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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